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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공감 능력 없으면 공동체는 붕괴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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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총선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오늘부터 사전투표가 가능하니 실제로는 선거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일컬어진다. 하지만 이번 총선을 지켜보는 유권자들의 얼굴에는 축제의 즐거움보다는 수심의 표정이 훨씬 많아 보인다. 정당의 후보자 공천 과정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선거 운동 중에도 막말과 저질 폭로가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관한 비전을 얘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과거에 대한 보복과 응징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아마도 이번 총선은 역대 최악의 선거로 기억될 것이고,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두 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의정(醫政) 갈등은 국민 모두를 지치게 하고 있다. 어제 대통령과 전공의 대표의 만남이 성사되었지만, 앞으로 갈 길이 먼 듯하다.

축제 아니라 갈등의 현장된 선거
끝없는 의·정 갈등에 국민들 불안
공동체 유지 위해 공감 정신 필수
지도층이 ‘내 탓이오’ 정신 살려야

국회의원 자리를 놓고 사생결단식으로 경쟁하는 정치인들이나 의료 정책을 두고 정부와 대치하는 의사들이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여럿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기심이 큰 동기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진화론자들에 의하면 생물의 유전자는 원래 이기적이고 자신의 번성만을 위해 활동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본주의 경제학의 토대를 제공한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해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 전체의 이익이 증진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신선한 빵을 매일 먹을 수 있는 것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좀 더 잘 살려는 그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는 그의 또 다른 대표 저작인 『도덕감정론』에서는 인간의 ‘공감(共感)’ 능력의 중요성도 설파하였다. 스미스는 이 책의 서두를 “인간이 아무리 본래 이기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에는 분명히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 이 천성으로 인하여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즐거움밖에는 얻을 것이 없다 해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였다. 즉 인간에게는 이기심도 있지만, 타인을 이해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공감 능력도 있어서 사회적 유대감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진화생물학자들도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이지만, 무리를 이루어 사는 동물들에게는 상호 간의 공감 능력도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이러한 공감 능력은 집단의 생존에 도움이 되며, 인류가 다른 동물들보다 번성한 이유 중의 하나도 구성원 간의 뛰어난 공감 능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이기심만 드러나고 타인과의 공감 능력은 사라진 것 같아서 걱정이다. 공감 능력이 있다 해도 자기와 이해관계가 같거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만 작동하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오히려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 진영 논리가 지배하고 패거리 정치가 난무하는 것이다. 정치의 본래 역할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공존하는 지혜를 만드는 일인데, 정치가 오히려 진영 간의 적개심만 강화하고 이것이 선거를 통하여 극대화되고 있다. 이래서는 선거가 어떻게 끝나든 사회 공동체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울 수 있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 갈등도 우리 사회의 배려나 공감 정신의 결핍을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고집스럽게 2000명 증원을 고수했고, 전공의들은 대화의 노력조차 없이 돌보던 환자들을 버리고 떠났다. 아무리 정부의 태도가 불만스럽다고 해도 환자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의사가 그렇게 쉽게 환자 곁을 떠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공감 능력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교수들은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어서 최악의 파국은 막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수많은 환자와 가족들은 불안에 떨며 지켜보고 있다. 교수들마저 공감 정신을 잃는다면 의사 집단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며, 사회를 유지하는 공동체 정신은 붕괴할 것이다.

과거에는 사회에 존경받는 어른들이 있어 사회적 혼란이 있거나 위기가 닥쳐오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곤 하였다. “내 탓이오” 운동을 주창하신 김수환 추기경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사회적 문제가 생기면 남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가르침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역지사지(易地思之)요, 공감의 정신이다. 그런데 지금의 소위 사회 ‘지도자’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은 상대방 악마화에 앞장서고 있으며, 정부는 다른 의견을 듣는 데 인색하고, 의료계 대표자들은 자기 입장만 내세우고 있다. 이들의 행동으로 그동안 우리가 소중히 가꾸어 온 사회 공동체가 무너진다면 앞으로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할 것이며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