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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증원 규모 빗장도 푼 정부…전공의들도 대화 응하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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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 대화 걸림돌이던 ‘2000명 고수’도 제거

대화 기회 걷어차지 말고 대승적 결단 기대

정부 관계자들이 어제 잇따라 ‘전공의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대통령의 의중을 전했다. 실제 전공의 대표와 물밑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져 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대국민담화에서 ‘합리적인 근거’를 전제로 제시하긴 했지만 “정부 정책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는 법”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한걸음 더 나아가 “2000명 숫자가 절대적 수치란 입장은 아니다”며 정원 확대 규모도 논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그간 “2000명 증원은 최소한의 숫자”라며 강경했던 태도에서 한걸음 물러선 것은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한 마지막 걸림돌을 치운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정부가 입장을 바꿔야 할 만큼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2일 비상경영체제 전환을 선언했다. 60여 개 병동 중 10개가량을 폐쇄하고 무급휴가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다른 병원들도 사정이 비슷해 일부 대형 병원이 파산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의대 교수들은 진료 단축에 들어갔다. 전공의 공백을 두 달 가까이 메우며 체력이 한계에 달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지만 환자들 고통은 커져만 간다. 지난 주말 충북에서 3세 여아가 상급병원 9곳에서 응급실 전원을 거부하는 바람에 숨진 것도 병원 의료진이 부족한 탓이 컸다. 이런 사고가 당장 다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2일 마감된 인턴 임용 등록에서 대상자 3068명 중 4.3%인 131명만 등록했다.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사태가 해결되더라도 인턴 없이 한 해를 버텨야 한다. 의대생 유급 시한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다음 해 의대에선 5000명이 아닌 8000명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의료체계가 휘청거릴 수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박단 대한전공의협회 비대위 대표에게 “윤 대통령이 만나기를 희망하면 아무런 조건 없이 만나볼 것”을 권했다. 대통령실도 즉각 “대통령도 직접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고 호응했다.

이제 공은 전공의들에게 넘어가 있다. 물론 만나서 아무 진전도 없이 이용만 당할 수 있다는 걱정을 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사직서를 낸 만큼 당장 의견을 모으기도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하지만 일단 정부가 전향적 자세를 보인 만큼 모처럼 생긴 대화 기회를 걷어차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의료 혼란이 전공의 사직에서 시작된 만큼 이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주체도 전공의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단 대화를 시작해 서로 의중을 전달하고, 한편으론 내부 의견을 모아야 한다. 의료계와 정부는 물론이고 모든 국민이 전공의들의 대승적 결단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