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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하레디 징집 면제에 화났다…"총리 퇴진" 10만명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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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지난 31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퇴진과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의 전쟁이 발발한 뒤 최대 규모다. 네타냐후가 이끄는 전시 내각이 인질·휴전 협상, 초정통파 유대교의 군 입대 문제 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자 쌓였던 불만이 터졌다.

반정부 시위에 10만명 운집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난달 31일 예루살렘 의회 밖에서 하마스가 억류한 인질 석방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난달 31일 예루살렘 의회 밖에서 하마스가 억류한 인질 석방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로이터통신·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이날 예루살렘에 있는 크네세트(의회) 건물 인근에는 시민들이 모여 네타냐후 정부가 주도하는 우파 연정의 퇴진을 촉구했다. 주최 측은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했다고 주장했고, 현지 매체는 수만명이 참가했다고 전했다. 현지 채널12 방송은 이날 시위가 "전쟁 발발 이후 최대 규모로 보인다"고 전했다.

시위대는 의회 주변에 텐트를 치고 오는 3일까지 나흘 연속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6개월 동안 네타냐후 전시 내각이 하마스 섬멸, 인질 전원 구출 등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시위대는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면서 "이 정부는 완전히 실패했다", "지금 당장 선거하라"고 외쳤다. 20대 대학생 엘라드 드라이푸스는 뉴욕타임스(NYT)에 "전쟁 중에 정부에 항의하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퇴진 요구를 일축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금 총선을 치르면 하마스와의 인질 협상이 최대 8개월 동안 마비될 것"이라면서 "이런 상황을 가장 환영하는 건 하마스"라고 강조했다.

하레디 징집 면제에 뿔났다

이스라엘 예비군 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31일 예루살렘에서 초정통파 유대인 하레디의 병역 평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 이를 반대하는 하레디와 충돌이 일어났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 예비군 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31일 예루살렘에서 초정통파 유대인 하레디의 병역 평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 이를 반대하는 하레디와 충돌이 일어났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시위의 도화선은 초정통파 유대인 '하레디(haredi)'의 징집 면제를 유지·확대하는 법안 때문이다. 구체적인 법안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하레디에 대한 군 면제를 영구화하고 면제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쟁 발발 후 하레디 2000명이 자원입대를 했으나, 최근 하레디 대다수가 여전히 군 복무에 반대하면서 논란이 됐다. 특히 이번 전쟁으로 약 600명의 군인이 사망했는데, 하레디 측은 군 복무 부담을 지지 않으려고 해 이스라엘 국민의 분노가 커졌다.

전시내각에 참여해온 중도파 야당 국민통합당의 베니 간츠 대표는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동료들과 함께 전시내각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야권 지도자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도 간츠 대표를 지했다.

반면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 의원들은 징집 면제를 연장하지 않으면 내각을 떠나겠다고 하면서 네타냐후 총리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NYT는 "이 문제로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과 우익 연합을 이룬 네타냐후 내각은 압박이 커지면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네타냐후 총리는 이 법안을 지난달 31일까지 정비하려고 했다. 그러나 내각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서 지난달 28일 대법원에 정비 시한을 30일 연장해달라고 했고, 이 요청이 수용되면서 시간을 벌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31일 "병역 분담 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한편, 하레디에겐 징집을 강요해선 안 된다"면서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하레디는 유대교 경전 '토라'를 공부하며 엄격한 신앙생활을 하는 종파로, 외신은 '극정통파'(Ultra-Orthodox)로 부른다. 구약성서에 적힌 복장·생활방식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하얀 셔츠·검은 정장·챙 모자로 상징되는 하레디 남성은 수염과 옆머리을 길게 기른다.

이들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로 말살된 유대인 문화와 학문을 되살리기 위해 다수가 따로 직업을 가지지 않고 정부 보조금을 받아 생활하면서 이스라엘 건국(1948년)부터 병역을 면제 받았다. 현재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12%가량으로 추산된다.

한편 휴전 협상을 두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31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휴전 협상이 재개된다고 알려졌지만, 하마스 측은 이날 회담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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