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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저출산, 우리가 분노하지 않는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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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진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진호 경제부 기자

정진호 경제부 기자

“화나지 않으세요?”

또 하락한 출산율에 취재 차 연락한 인구 전문가가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 문제를 얘기하면서 어떻게 목소리가 평온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출산율이 바닥없는 추락을 이어가면서 미래가 어두울 게 뻔한데 청년층이 분노하지 않는 게 의아하다고 했다. “저야 곧 은퇴하고 연금 받으니 제가 살아있는 동안은 상관없지만, 기자님은 다를 텐데”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역대 최저, 세계 최저다. 작년 한 해 태어난 아이는 23만명이다. 1970년대엔 연간 출생아 수가 100만명대, 1990년대엔 70만명대였다. 불과 2016년만 해도 40만명이 넘었다. 지난 1월 출생아 수는 더 충격적이다. 2만1442명으로, 1년 전보다 7.7% 감소했다. 올해는 출산율이 0.6명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출생아 수 감소로 가장 큰 피해를 볼 계층은 이른바 MZ세대다. 교육·고용·산업·연금 모두 저출산 기조가 이어지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국민연금 고갈은 2055년으로 예고됐다. 30년 남은 셈이니 지금 30대라면 대략 연금 수령 시점 고갈된다. 일할 사람은 빠르게 줄고 있다. 인력난으로 인해 중소 제조업체 위주로 산업계에 위기가 닥친 지도 오래다.

저출산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던 만큼 학령인구 감소는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72개 초·중·고교가 문을 닫았다. 지난해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대학의 입학정원은 47만명이다. 작년 출생아(23만명)가 전부 대학에 간다 해도 이대로면 대학의 절반이 신입생을 1명도 받지 못한다. 대학 구조조정이 시급하지만 청사진은 없다.

향후 터질 저출산 충격을 흡수해야 하는 건 지금 일하는 세대와 앞으로 일할 세대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이들보다 감당해야 할 무게가 무겁다.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부양할 인구(유소년·고령층)를 뜻하는 총부양비는 2022년 40.6명에서 2058년이면 101.2명으로 100명을 넘어선다.

길에선 요란한 선거송과 함께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 “범죄자 정당에 투표할 거냐” 같은 구호만 들린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저출산 대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긴 했지만, 향후 출산을 지원해주겠다는 것일 뿐 곧 다가올 인구 충격에 대한 논의는 없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교육개혁, 연금 고갈을 막기 위한 연금개혁, 노동력 감소를 대비한 노동개혁 등은 공약 테이블에 올라오지 않는다.

미래 세대를 위한 개혁은 고령층의 희생이 수반되다 보니 인기가 없다. 2020년 총선 20대와 30대 투표율은 각각 58.7%, 57.1%다. 60대 이상 투표율은 80%였다. 화가 안 난다는데 누가 챙겨주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