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웅의 총선 레이더 ⑫ 여론조사와 품질
여론조사 결과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른바 ‘자체조사’라는 게 눈에 띈다. 어떤 의뢰인도 없이 조사대행사가 자비를 들여서 조사해서 발표한다는 뜻이다. 여론조사심의위 자료를 검토해 보면, 지난 11월 이후 수행한 전국기준 여론조사 211건 가운데 69건, 즉 약 33%가 ‘자체조사’에 해당한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72개 전국조사 가운데 자체조사는 7건에 머물렀다는 사실과 비교해 봐도 확연히 증가한 결과다.
도대체 왜 조사대행사가 자체적으로 조사비용을 떠안고 조사한단 말인가.
언론이 여론조사에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조사결과 그 자체가 독점적인 뉴스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언론사는 조사대행사에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결과에 대한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고, 따라서 독자적으로 그리고 독점적으로 뉴스를 생산할 수 있다. 특히 선거기간 동안 정당과 정치인의 캠페인에 이끌려가는 보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언론은 여론조사를 인용해서 해석함으로써 주도적으로 정국을 조망하고 판세를 점칠 수 있게 된다.
언론사는 또한 여론조사를 이용해서 뉴스 이용자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 경쟁하는 정당과 후보자들 가운데 과연 누가 이기고 있는지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준거로 삼아 선거 과정에 내재하는 경쟁요인들을 재료로 유권자들이 흥미를 느끼는 방식으로 뉴스를 제작할 수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전화면접조사의 경우 전국 1000명 표본을 기준으로 대략 1500만원가량 드는데, 이는 목표 응답률 개념을 적용할 수 없는 신속조사 기법을 사용하기에 가능한 저렴한 액수다. 대략 2~3일 내에 조사결과를 내기 위해 미리 표집한 전화번호를 대체해 가면서 목표 응답자 수를 채워나가는 방식이기에 응답률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른바 ARS 조사 등 기타 방법론을 사용하면 비용은 1/3로 낮아진다. 그러나 언론사로서는 아무리 저렴하더라도 품질을 보장할 수 없으면 뉴스 재료로 삼을 수 없기에, 조사비용에 따른 편익을 세심하게 따지기 마련이다. 언론사가 의뢰한 여론조사라 할지라도 품질이 천차만별인 이유다.
그러나
선거 캠페인 기간에 언론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유권자의 주목을 노려 뉴스를 제작한다. 그러나 시민의 정치적 판단을 돕기 위해서 노력하는 언론이라면 조사의 품질에 염려하기 마련이며, 이는 비용이 드는 일이다. 따라서 애초에 조사품질은 상관할 바 없다는 듯 저렴하게 조사결과를 얻어서 남발하는 경우라면, 그게 누구고 어떤 명분이건 간에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할 수 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