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즐거운 크리스마스는 처음”/일산주민 「보은의 군위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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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수재도운 고마움 못잊어 방문/막걸리 따라주며 흥겨운 잔치/자매결연 해마다 꼭 만나기로
『이렇게 즐거운 크리스마스는 처음입니다.』
『자매결연 했으니 새해에는 더욱 친하게 지냅시다.』
올여름 대홍수때 한강둑 붕괴로 온마을이 침수돼 엄청난 수해를 입었던 경기도 고양군 일산읍 토당4리 주민들이 성탄전날 당시 복구를 헌신적으로 도와준 고마운 군장병들을 찾아가 보은의 위문잔치를 벌였다.
24일 낮12시30분 쌀 한가마분의 떡과 돼지고기·막걸이 15말을 소형트럭·경운기에 싣고 주민대표 30명이 도착하자 장병들은 손뼉을 치며 도열,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막사앞에서 즉석파티가 벌어지고 장병들은 동네 노인과 청년·아주머니가 따라준 막걸리를 들이켜며 한시간여 동안 흐뭇한 표정으로 수해때 어려웠던 얘기들을 나누었다.
육군○사단○연대 3대대 장병들과 이들 주민들이 인연을 맺게된 것은 지난 9월12일.
한강둑 붕괴로 마을 1백80여가구중 1백여채가 부서지고 농경지가 모두 잠기는 큰 수해를 입자 4백여 장병들이 주민구조·복구작업에 앞장서면서 실의에 빠져있던 주민들에게 재기할 수 있다는 의욕과 함께 진한 감동을 주었던 것.
2백여 주민들이 물바다를 피해 마을뒤 야산에 대피,고립상태에 놓이자 장병들은 대대장 조영천중령의 지휘로 밤새 고무보트 20여척·드럼통 뗏목을 이용,이들을 1㎞ 떨어진 능곡으로 모두 무사히 피신시켰다.
물이 빠진뒤 주민들이 복구의 엄두조차 못내고 허탈에 빠져있을때 군인들은 포클레인·야전삽·양수기 등 각종 장비를 동원,마을어귀에 한달동안 텐트로 야영하며 쓰레기 청소,무너진 집과 담쌓기,마을안팎 청소 등 힘겨운 작업을 도맡아 해주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주민들은 두달쯤뒤 원래의 마을모습을 되찾게 됐으며 다 망친줄 알았던 농사도 장병들과 함께 벌인 벼세우기 작업으로 절반쯤 건질수 있었다.
『물이 빠진 직후 폐허가 된 마을을 보며 모두들 넋이 빠져있을때 장병들의 힘찬 복구작업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웃통을 벗어제친채 밤낮없이 계속되는 이들의 정성이 우리에게도 복구의 삽을 들게했지요.』
연말이 되면서 이구동성으로 『장병들을 찾자』고 입을 모았고 이장 한병현씨(50)가 22일 오전 마을방송을 통해 부대위문을 제의하자 순식간에 5백여 주민들이 70여만원을 모았다.
한씨는 마을 유지들과 협의,모은 돈으로 1백50∼1백70근짜리 돼지 세마리를 사 22일 오후 부대를 찾아 전달한 뒤 이틀후인 성탄전날 다시 오겠다는 뜻을 전했다.
24일 떡·막걸리와 조중령에게 줄 감사패까지 마련한 주민들은 장병들이 조그마한 정성에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아예 마을과 부대가 자매 결연하자』고 제의,형제·자매가 된 것이다.
『매년 부대를 찾아 노고를 달래는 흥겨운 자리를 만들겠다』는 주민들의 말에 조중령과 장병들은 『고향의 부모·형제처럼 따뜻이 맞겠다』고 다짐하며 기뻐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이같이 큰 대접을 받고보니 우리 모두 국민의 군인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됐어요.』
장병들은 마을로 돌아가는 주민들을 부대밖까지 배웅하며 오랫동안 손을 흔들었다.<일산=최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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