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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제환경 변화에 탈고립 동분서주|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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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서구에도 협력손길>
북한은 올해 한국이 소·동구권과 관계개선을 하고 적극적으로 유엔외교를 펼치는 가운데 그 대책 마련에 부심하면서 한해를 보냈다.
즉 북한은 외교적 고립을 타개하기 의한 대응외교에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반제노선과 이념지향을 유지하면서도 정세변화를 고려, 남북관계로 돌파구를 여는 한편 탈이념적 현실노선을 택했다.
이념지향과 관련, 중국과 사회주의체제 고수를 위해 공동전선을 펴는 한편 비동맹 외교에도 여전히 역점을 두었다. 또 한-소 수교로 조성된「한반도문제의 국제화」조류에는 남북관계 적극화 및 일본과의 관계개선으로 대응했다.
탈이념적 현실노선과 관련, 일본 뿐 아니라 서유럽·호주·동남아국가들과도 친선협력의 손길을 내밀었다.
금년의 북한외교가 한국의 외교공세에 대한 대응 외교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은 그들의 외교일지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몰아친 소·동구권의 격심한 변화와 한국의 북방정책이 맞아떨어진 조건에서 북한은 피하기 어려운 외교적 수세에 처했다.
이 상황에서 북한은 우선 중국과외 관계를 돈독히 하는 길을 찾으러 했다. 4월14∼16일의 장쩌민(강택민) 중국 당 총서기의 북한방문이 이를 잘 보여준다.
5월 24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9기 1차 회의에서 김일성은 새로운 정세변화를「한반도문제의 민족내 불화」로 대처하려는 연설을 했다. 즉 적극적인 남북대화와 평화통일에 유리한 국제환경마련을 강조했다. 이때부터「단일의석에 의한 유엔공동가입」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6월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소 정상회담이 열리자 북한은 범민족대회 등을 통해 통일문제로 관심을 돌리고자 하는 한편 수면 아래서 일본과의 협상을 추진했다.
9월초 서울에서 첫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렸을 때 소련은 이미 한국과의 수교를 기정 사실화 한 상황이었다. 소련 외무장관 셰바르드나제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드러난 북한·소의 불화는 그 뒤 북한이 외교비망록을 일방 발표한데서 알 수 있듯이 상당히 심각했다. 당시 소련은 북한이 수입하는 소련산 원유 및 공산품 등에 대한 결제방식을 내년 1월부터 달러·엔 등 경화로 바꿀 것을 통보했다.
이 무렵부터 북한·소는 언론공방전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김일성은 9월 11∼13일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 대중 밀착외교를 편 것으로 알려졌다.
9월 30일 한-소 공식 수교협정이 맺어지기 이틀 전 북한은 일본과의 수교협상개시에 합의함으로써 북한외교에 새 국면을 만들어냈다.
그 뒤 11월 23∼28일간 북한의 연형묵 총리는 중국을 공식방문, 경제협력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연 총리는 천율·심천 등 중국개방지구를 산업 시찰해 주목을 끌었고 경제협조에 관한 협정에도 조인했다.

<대미외교 성과 못 봐>
최근 흘러나온 정보로는 중국 측의 요구로 92년 하반기부터 종래의 구상무역을 신용장(L/C)에 의한 거래방식으로 바꿀 것으로 알러졌다.
별 성과 없이 끝난 12월 중순의 3차 남북고위급회담 때 노 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하자 북한은 곧이어 일본과의 수교 본 회담을 내년 1월말 평양에서 시작한다는 합의를 끌어냈다.
금년에 북한은 대미관계도 중시했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6·25당시 실종된 미군 유해의 반환 및 참사관 급 접촉을 통해 북한·미간 접촉수준을 대사급으로 격상하길 요구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의 대미외교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정부간 직접대화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미국은 대북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국제원자력기구의 핵 안전협정에 북이 가입할 것 등을 요구했다. 핵사찰의 전제조건으로 주한미군의 핵무기철수를 주장해왔던 북한은 10월 중순 외교부 성명을 통해 미국이 북한에 핵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법적 담보」를 주는 조건에서만 핵 안전협정에 조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로써 북한·미 협상 가능성이 예측되기도 했지만 금년에는 불발로 끝났다.
북한은 또 외교다변화를 시도하는 가운데 서유럽·호주·동남아 국가들의 교류에 관심을 기울였다.
김용순 당 국제담당비서, 이동호 대외문화연락위원장 등이 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에 방문외교를 펼쳤다.
75년이래 단교상태였던 호주와의 관계개선 의사를 11월초에 타진하기도 했다.
호주가 영연방일원인 점에서 대 유럽외교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그리고 4월말∼5월초 외교부 부부장 차봉주가 동남아 4개국을 순방했고 내년 초 연 총리의 순방을 앞두고 11월 인민무력부장 오진자가 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또 대만과의 관계개선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는 증거도 나타났다. 대만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비자발급사무소를 마카오에 개설했고 대북에도 설치하고자 접촉하고 있다.
북한의 비동맹외교는 예년수준에서 계속됐다.

<23개 국가 대사 교체>
아라파트 PLO의장과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5월 평양을 방문했고 9월의 당 창건 45주년 행사 때는 라치라카 마다카스카르 대통령 등 제3세계 비동맹국가들로부터 대표단을 초청했다.
또 이종옥·박성철 부주석, 김영남 외교부장, 여러 외교부 부부장 등이 아시아·아프리카·중동 및 중남미지역을 찾아다니는 방문외교를 활발히 폈다.
북한은 올해 4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 1백5개로 수교국가가 늘어났다. 이 가운데 23개국의 대사를 교체했으며 23개 국가·외국단체와 63건의 각종 협정을 체결했으나 88년의 96건과 89년의 1백6건에 비하면 매우 저조했음을 보여준다. <유영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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