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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지역 수가' 뒤죽박죽?…서울 외곽 병원 역차별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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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분만실. 연합뉴스

산부인과 분만실. 연합뉴스

산부인과의 폐업을 막기 위해 정부가 분만 수가(의료행위에 대한 대가)를 큰 폭으로 인상하기로 했지만, 현장에서는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과 광역시를 제외한 지역에 수가를 더 많이 주는 방식 때문이다. 지방보다는 수도권에 지원이 집중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신도시 산부인과만 유리한 지역 수가?

12월 도입예정인 지역 수가와 안전정책 수가. 사진 보건복지부

12월 도입예정인 지역 수가와 안전정책 수가. 사진 보건복지부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복지부는 12월부터 분만에 ‘지역 수가’와 ‘안전정책 수가’를 도입할 예정이다. 지역 수가는 특별·광역시와 같은 대도시를 뺀 전 지역 의료기관에 분만 건당 55만 원을 보상하는 걸 말한다. 수가를 지역별로 다르게 적용하는 전국 단위 지원체계가 마련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안전정책 수가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상근하면서 분만실이 있는 의료기관에 분만 건당 55만 원을 추가로 주는 것이다.

신설된 수가의 재원은 연간 2600억 원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된다. 복지부는 “이들 수가가 지역 의료 불균형 문제 등을 해소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지역·안전정책 수가를 다 받는 의료기관이라면 110만 원을 받게 돼, 현재 수준(평균 55만 원)의 3배(165만 원)에 달한다.

2021년 12월을 끝으로 운영을 중단한 경기도 안성시 안성모아산부인과의원 분만실. 사진 김재유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 회장 제공

2021년 12월을 끝으로 운영을 중단한 경기도 안성시 안성모아산부인과의원 분만실. 사진 김재유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 회장 제공

하지만 분만 수가 인상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과 광역시를 제외한 전 지역에 더 많은 보상을 주도록 설계된 탓이다. 분당·일산·동탄 등 경기도 신도시 산부인과는 지역 수가를 받지만, 강서·구로·금천·도봉·은평과 같은 서울 외곽에 있는 산부인과는 받지 못한다. 서울 내 산부인과는 55만 원(안전정책 수가)만 더 받고, 경기도 전 지역 산부인과는 110만원을 더 받는 셈이다. 이에 대해 한 의료계 관계자는 "55만원, 110만원 차등의 근거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적당히 나눠서 지원하겠다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한 병원 관계자는 “수도권인 경기도는 젊은 층 유입과 인구 증가로 분만 병원이 대형화하는 반면 서울과 지방은 병원이 소멸 위기”라며 “금천·광진·서대문·은평·중랑 등 서울 외곽은 구(區)에서 분만 병원이 딱 1곳 있을 정도로 상황이 열악한데 지역 수가를 차등 지급한다면 안 그래도 부족한 분만 의사들이 서울에서 경기도로 많이 빠져나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서울 도봉구와 성남 분당구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병원 찾기 서비스를 통해 비교했을 때 각 구 내엔 산부인과(1·2·3차 의료기관 포함)가 각각 8개, 23개가 있다. 분당 등 신도시의 분만 여건이 훨씬 나은 셈이다. 2022년 합계 출산율도 분당(0.77명)이 도봉(0.57명)보다 높다.

서울의 한 산부인과 관계자는 “서울이라 해도 변두리 지역은 분만 건수가 매년 줄고 있어 분만실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지역별 수가를 주면 분만이 많은 신도시 산부인과 배만 불리는 꼴”이라며 “분만 건수가 극히 적어 간신히 분만실을 이어가는 산부인과에 인프라 운영비가 집중 지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36% 감소한 분만실…“특단 대책 필요”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산부인과는 저출산 현상 등과 맞물리며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분만이 가능한 전국 의료기관 수는 2012년 729곳에서 2022년 461곳으로 10년 만에 36.7% 감소했다.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는 2004년 259명에서 2023년 102명으로 60% 넘게 줄었다. 의료계에서는 “근거가 불명확한 수가 차등지급보다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도 안성시에서 유일했던 분만실을 2021년에 닫은 김재유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회장은 “지역 수가가 닫은 분만실을 다시 열게 하거나 분만실을 이어가게 하는 유인책이 될 거라고 보지 않는다”라며 “전 지역 산부인과에 수가를 균등하게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지정 산부인과 전문병원인 대구 효성병원의 박경동 원장은 “분만실 운영을 위해서는 의사·간호사 등 최소 인력이 필요한데 수가가 인건비 등을 감당하지 못한다”라며 “수가보다는 분만실 운영비를 실질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차등 수가 방안에 대해 “지역 수가는 분만이 극히 적은 중소 도시 산부인과를 우선 살리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한다. 사정이 어려운 지역 산부인과에 수가를 더 얹어주면 분만실을 닫지 않고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일부 지역에 지원이 몰린다는 지적은 예외적인 사례”라며 “신설 수가에 대한 부작용이 있는지를 면밀히 모니터링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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