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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기여금 입학 필요하나 시기상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우리 나라 대학의 시설·환경 등 교육여건은 외국에 비해 극히 열악해 현재의 여건으로는 2000년대를 담당할 교육과 연구를 수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선진국 진입도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이 대학의 안팎에서 높게 일고있다.
따라서 대학교육의 질적 수월성을 보장할 수 있는 교육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재원확충방안으로 사립대학의 기부금 입학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보조가 거의 없고, 재단의 전입금 수준도 극히 영세한 입장이고, 수익자부담 원칙을 적용해 납입금을 인상하는 것도 현재의 학생납입금 의존도가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높고, 또한 인상에도 한계가 있다보니 전체학생의 등록금부담을 줄이고 대학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이 제도가 제안되었음은 충분히 안다.
이에 대해 반대론은 교육의 기회가 경제적 상층계층에 더욱 유리하게되어 계층간의 불균등과 위화감이 조성된다는 점, 물질만능주의 사고로 대학의 도덕성마저도 훼손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 제도를 두고 한번 더 생각할 것은 첫째, 대학의 재정위기극복을 위해 정부와 사회, 대학 모두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인 다음 비로소 나온 것이었느냐는 점이다.
정부와 사회도 대학교육의 수혜자다. 수익자부담 원칙에 따라 학생과 정부는 어느 정도 형평하게 교육비를 부담해야한다. 정부는 공 교육비 규모확대, 교육세제도 개선, 문교예산 중 고등교육비 증대, 사학재단 진홍법의 기능·운영의 활성화, 사학의 재정자율권 확대보장 등은 이 제도보다 선행되어야 할 과제가 아닐까. 민간이나 기업체도 인력활용에 대한 대가지분을 세금이나 기부의 방법으로 조건 없이 해야한다.
둘째, 부의 축적 과정의 정당성이 논란되고있는 시점에서 일부 특수층에 기부입학특전을 주는 것이 과연 기회균등의 실현이고 사회의 안정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오늘날 범죄의 증가 등 사회 병리현상은 부의 공정한 분배체계가 이루어지지 못한데 대한 위화감, 상대적 빈곤감도 큰 원인이 되고있다고 볼 때 기여입학제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 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매우 신중하게 다뤄져야 할 것이다.
셋째로 대학이 기부금 입학제를 실시할 수 있는 재정적·행정적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고 사회적으로 대학에 대한 공공성과 신뢰를 받고있으며 이 제도에 대한 구성원간의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학생의 선발권·모집정원책정·정원관리·학과조직개편·학사운영 등에 대한 정부의 통제에서 자율을 확보하는 것이 이 제도에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대학구성원간의 합의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기부금 입학이 아니라 대학에 오래 봉직한 교직원자녀의 입학에 대한 약간의 특혜조치로 유수한 대학들이 분쟁을 겪지 않았는가.
대학재정의 위기극복은 당면한 시급한 과제다. 그러나 기부금 입학제는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상황·사회·문화·역사적 전통과 배경이 이를 수용해야 할 것이라는 조건이 어느 조건보다 소홀히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사회·대학이 선행과제의 수행을 통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이에 대한 더 많은 논의와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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