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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정부, 100억 내고 뒷짐…500억 '어린이 공공병원' 운영난

중앙일보

입력

“50병상이라더니 병상이 다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의료 인력도 부족하고…”

대전에서 뇌 병변 1급 장애가 있는 아들 건우(14) 군을 키우는 김동석(51)씨는 29일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2018년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004배를 하기도 했다. 김씨와 같은 장애아 부모의 염원에 따라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지난 5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전에 문을 열었다. 하지만 벌써부터 운영난 등으로 불안해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김씨는 “운영비 지원이 부족해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공공이라는 이름표가 붙었지만,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립해놓고 운영비 지원 없는 공공 어린이재활병원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과 이장우 대전시장 등이 지난 5월 30일 개원식이 열린 대전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과 이장우 대전시장 등이 지난 5월 30일 개원식이 열린 대전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은 장애 아동이 지역사회 안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며 재활치료뿐 아니라 교육과 돌봄 등 통합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병원이다. 2018년부터 건립 사업이 추진돼 2022년까지 권역별로 의료기관 10곳(병원 2곳·센터 8곳)이 지어지는 게 정부 목표였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건립을 마친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은 대전에 있는 ‘대전세종충남·넥슨후원 공공어린이재활병원’ 한 곳뿐이다. 위탁식으로 운영되는 지정 병원은 서울·경기·제주 3곳에 있다.

대전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은 국비 100억원, 시비 294억원, 기업 후원 100억원 등 총 사업비만 494억원이 들었다. 막대한 돈이 들어갔지만 인력난은 피하지 못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 3명이 필요하지만, 지난 3월부터 8개월째 2명으로 운영 중이다. 나머지 1명을 채우지 못해 인근 충남대병원에서 전문의를 파견받고 있다. 당직 의사도 구하지 못해 공중보건의사(치과) 2명이 자리를 메꿨다. 재활치료사도 부족하다고 한다. 병원 관계자는 “기피과 특성상 병원 사정을 알게 되면 오기로 했다가 이를 취소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장애 아동에 대한 재활 치료는 수익성이 낮아 구조적으로 적자가 예상된다. 이 때문에 지역 사회는 안정적인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운영을 위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지정 병원에는 인건비 등 운영비 일부인 9억3750만원(국비 80%, 지방비 20%)을 지원하고 있지만, 건립 병원엔 운영비를 따로 주지는 않는다. 지난 8월 대전·세종시와 충남·충북도가 지정 병원처럼 필수 인건비의 80%를 국비로 지원해달라고 복지부와 기획재정부에 요청했지만 '건립병원에 운영비 지원 사례가 없다'며 거절당했다.

운영비 따져봤더니

대전세종충남·넥슨후원 공공어린이재활병원 내부 시설 모습. 연합뉴스

대전세종충남·넥슨후원 공공어린이재활병원 내부 시설 모습. 연합뉴스

재활 치료가 필요한 장애 아동은 전국 20만5672명(2021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지만 실제 치료를 받은 아동은 2만4108명(12%) 정도에 불과하다. 시설 부족 등이 이유로 꼽힌다. 그래서 정부가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만든 것인데 이마저 지원이 부족해 운영난을 겪고 있는 실정인 셈이다. 현재 복지부는 병원 1곳과 센터 8곳에 대한 건립을 추진 중인데, 이들 시설 역시 향후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에 의뢰해 받은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인건비 지원 비용 추계’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가 공공어린이재활병원에 필수인력별 최소 인원 인건비를 지원할 경우 병원 1곳당 26억3200만원(올해 기준)이 필요한 것으로 추계됐다.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 인건비 가이드라인 등을 참고해 재활의학과 전문의 2명, 물리치료사 20명, 작업치료사 16명 등 최소 45명에 대한 인건비가 계산됐다. 필요한 추가 재정은 내년 기준 92억8500만원으로, 국비(80%)는 75억2800만원이 더 들 것이라 봤다. 복지부는 “추가적인 운영비 지원 등은 필요하다고 본다. 재정 당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강선우 의원은 “어린이재활병원은 수익성이 낮아 환아를 치료할수록 적자가 발생하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며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의 지속할 수 있고도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필수인력에 대한 정부의 충분한 예산이 지원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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