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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총선 눈치’에 골든타임 놓칠 위기 맞은 연금개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정부, 보험료율 인상 등 알맹이 빠진 방안만 검토

‘맹탕’ 개혁안은 무책임, 반드시 단일안 도출해야

정부가 이달 말 국회에 제출할 연금개혁안에 보험료율 인상 등 구체적 내용을 담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연금개혁의 알맹이가 빠진 사실상 ‘맹탕’ 개혁안이다. 대신 정부는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등을 아우르는 식의 포괄적 구조개편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복수의 정부 고위 관계자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런 보도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공식적으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의견을 검토해 이달 말까지 종합운영계획을 수립하겠다는 원론적인 설명만 내놨다.

국민연금은 최근 적립금 1000조원을 돌파하며 세계 3위로 올라섰다. 겉으론 화려한 모습이지만 속으론 골병이 들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41년 지출이 수입보다 많아지는 적자로 돌아서고, 2055년 완전히 고갈되는 재앙을 피할 수 없다. 지난 3월 정부가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의 결과다. 1990년생이 65세가 돼서 노령연금을 받을 때가 되면 국민연금 기금이 한 푼도 남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처럼 연금개혁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지만 사회적 논의의 진전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연금 전문가들이 참여한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지난달 18개의 연금개혁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일단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성과는 있었다. 하지만 개혁 시나리오를 한두 개로 압축하는 데 실패하고 너무 많은 시나리오를 나열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했다.

이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느냐, 마느냐를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노후 소득 보장에는 유리하지만 연금보험료를 납부하는 젊은 세대의 부담도 동시에 커진다. 결국 전문가 위원회는 초안에 없던 소득대체율 인상 시나리오까지 최종 보고서에 담는다고 한다. 가뜩이나 복잡하게 꼬여 있는 연금개혁의 시나리오가 더 꼬이게 생겼다.

정부로선 고민이 적지 않겠지만 그럴수록 엄중한 책임감을 갖고 단일안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행여라도 알맹이가 빠진 채로 형식적인 개혁안을 내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이번에 정부가 단일안 제출에 실패하면 국회에서 연금개혁 논의는 실질적 진전 없이 겉돌 가능성이 크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2018년 사지선다형으로 네 가지 개혁안을 나열했을 때 당시 야당(현재 여당) 의원들이 “무책임의 극치”라며 맹비난했던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연금을 포함한 3대 개혁을 국민 앞에 약속한 윤석열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야당도 정치적 계산을 내려놓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생산적으로 연금개혁 논의에 임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론의 눈치만 살피느라 연금개혁에 진전을 이루지 못한다면 역사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