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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 사색] 사람 숲에서 길을 잃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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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호 30면

사람 숲에서 길을 잃다
김해자

너무 깊이 들어와 버린 걸까
갈수록 숲은 어둡고
나무와 나무 사이 너무 멀다
동그랗고 야트막한 언덕배기
천지사방 후려치는 바람에
뼛속까지 마르는 은빛 억새로
함께 흔들려본 지 오래
막막한 허공 아래
오는 비 다 맞으며 젖어본 지 참 오래

깊이 들어와서가 아니다
내 아직 어두운 숲길에서 헤매는 것은
헤매다 길을 잃기도 하는 것은
아직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한 탓이다
깊은 골짝 지나 산등성이 높은 그곳에
키 낮은 꽃들 기대고 포개지며 엎드려 있으리
더 깊이 들어가야 하리
깊은 골짝 지나 솟구치는 산등성이
그 부드러운 잔등을 만날 때까지
높은 데 있어 낮은, 능선의
그 환하디환한 잔꽃들 만날 때까지

『무화과는 없다』 (걷는사람 2022)

점점 이상한 느낌이 엄습해왔습니다. 어쩌면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불안함. 조금 전 갈래에서 왼쪽 길로 들어섰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아닌 것 같기도 하는 혼란. 하지만 이 길이 아닌 것 같아도 확실하게 아님을 알 때까지 나는 얼마간 더 걸어야 합니다.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까요. 온전히 스스로 알아내야 합니다. 미로 같은 길을 헤매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온다고 해도 혹은 막다른 길을 만난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모르는 이 길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는 아직 모를 일이니까요. 그러니 얼마간은 더 깊이깊이 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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