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숲에서 길을 잃다
김해자
너무 깊이 들어와 버린 걸까
갈수록 숲은 어둡고
나무와 나무 사이 너무 멀다
동그랗고 야트막한 언덕배기
천지사방 후려치는 바람에
뼛속까지 마르는 은빛 억새로
함께 흔들려본 지 오래
막막한 허공 아래
오는 비 다 맞으며 젖어본 지 참 오래
깊이 들어와서가 아니다
내 아직 어두운 숲길에서 헤매는 것은
헤매다 길을 잃기도 하는 것은
아직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한 탓이다
깊은 골짝 지나 산등성이 높은 그곳에
키 낮은 꽃들 기대고 포개지며 엎드려 있으리
더 깊이 들어가야 하리
깊은 골짝 지나 솟구치는 산등성이
그 부드러운 잔등을 만날 때까지
높은 데 있어 낮은, 능선의
그 환하디환한 잔꽃들 만날 때까지
『무화과는 없다』 (걷는사람 2022)
점점 이상한 느낌이 엄습해왔습니다. 어쩌면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불안함. 조금 전 갈래에서 왼쪽 길로 들어섰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아닌 것 같기도 하는 혼란. 하지만 이 길이 아닌 것 같아도 확실하게 아님을 알 때까지 나는 얼마간 더 걸어야 합니다.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까요. 온전히 스스로 알아내야 합니다. 미로 같은 길을 헤매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온다고 해도 혹은 막다른 길을 만난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모르는 이 길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는 아직 모를 일이니까요. 그러니 얼마간은 더 깊이깊이 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박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