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詩)와 사색] 층계참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58호 30면

층계참
유이우

발자국을 숨 쉬는
계단이다

걸음이 떠나면

언제나 우리의
흐릿한 박자가 남아 있어

올라가면서
내려가면서

우리들은 자기 자신으로 날아가면서
창문을 한번 바라보았다

생각 속에 살다가 푸른 것을
생각 속에 살다가 푸르른 것을

발가락이 다 쏟아질 듯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실루엣을 벗어나는 것들과

날으는 새들까지도

간직할 수 없는 세상에서

공중을 낭비하는 기다림
『내가 정말이라면』 (창비 2019)

층계참은 계단과 계단 사이에 있는 비교적 넓은 곳을 일컫는 말입니다. 주로 계단 방향이 꺾이는 곳에 마련됩니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숨을 고르고 걸음을 쉬기도 합니다. 손에 들고 있던 무거운 물건도 잠시 내려두고요. 당연히 이 층계참은 목적지가 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과정이나 중간. 하지만 계단을 오르는 일이든 삶의 목표에 이르는 일이든 이러한 참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길이 더욱 고되고 어려워질 테니까요. 어쩐지 지금 마주한 가을날이 층계참처럼 느껴집니다. 곧 다시 걸음을 옮겨야 하겠지만 이참에 저마다 맑고 푸른 생각 하나를 꺼내 보아도 좋겠습니다.

박준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