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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해" 4년간 수차례 민원에 밟힌 대전 교사…교장은 발 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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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4년간 극심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교장과 교감 등 관리자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지난 5일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이틀 뒤인 7일 숨진 초등학교 교사 A씨가 근무하던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 전국에서 보낸 수백여 개의 조화가 놓여져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5일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이틀 뒤인 7일 숨진 초등학교 교사 A씨가 근무하던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 전국에서 보낸 수백여 개의 조화가 놓여져 있다. 신진호 기자

대전시교육청은 27일 ‘고(故) 대전용산초 교사 관련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숨진 초등학교 교사 A씨(42)에게 학부모 2명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민원을 16차례 제기했다고 밝혔다. A씨가 담임을 맡았던 2019년이 12회로 가장 많았고 2020년과 2021년에는 각각 1건, 2022년에는 2건을 제기했다, 학부모 1명은 13차례나 민원을 제기, A씨를 압박했다고 한다.

학부모들 "혐의 없음' 결정 불복…또 민원 

A씨는 2019년 대전 유성구의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았다. A씨가 맡았던 반에서는 학생 4명이 교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다른 학생을 괴롭히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A씨가 해당 학생들을 정상적으로 지도했지만, 학부모들은 자녀에게 사과하라며 지속해서 민원을 냈다. 대전시교육청은 이 같은 민원으로 A씨 교육활동이 크게 위축된 것으로 판단했다.

학부모들은 그해 11월 말 3일 연속 5차례에 걸쳐 같은 민원을 냈다. 12월에는 검찰과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동시에 신고했다. 2020년 10월 검찰이 아동학대 신고에 ‘혐의없음’ 결정을 내리자 2021년 4월과 2022년 3월 “(검찰의 결정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추가로 민원을 제기했다.

지난 16일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교사들이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동료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16일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교사들이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동료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대전교육청은 반복적인 민원으로 A씨가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됐고, 이로 인해 정상적인 교육활동이 어려워졌다고 판단했다. 부당한 민원을 16차례나 반복 제기한 것은 중대한 교육활동 침해라는 게 대전교육청 설명이다. 대전교육청은 학부모 2명은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할 방침이다.

피해 교사 상담에도 교장 "민원 확대" 우려

교육청 등 조사 결과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던 A씨는 2019년 11월 교감에게 두 차례 고충을 털어놓고 힉교에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요청했다. 하지만 교감은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고 지시한 뒤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결국 2019년 12월부터 2022년까지 학교교권보호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관련 법(교원지위법 제15조)에 따르면 교육활동 침해 사례가 발생하면 학교장은 즉시 피해를 본 교원의 치유를 돕고, 학교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A씨가 재직 중이던 학교 교장은 사태가 커질 것을 우려,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고 한다.

지난 5일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이틀 뒤인 7일 숨진 초등학교 교사 A씨에게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 학부모가 운영하는 매장에 비난성 글을 쓴 메모지가 가득 붙어 있다.신진호 기자

지난 5일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이틀 뒤인 7일 숨진 초등학교 교사 A씨에게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 학부모가 운영하는 매장에 비난성 글을 쓴 메모지가 가득 붙어 있다.신진호 기자

대전교육청은 해당 교장과 교감의 미흡한 대처가 ‘교육공무원법’ 상 성실 의무 등에 위배된다고 판단, 2개 학교 교장과 교감 등 4명을 징계할 방침이다. 공무원 징계는 견책부터 파면까지 가능하다. 이르면 10월 대전시교육청교권보호위원회를 열고 A씨의 순직 처리 여부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국민신문고 동일 민원 7건…교육청 "단순 민원"

감사 과정에서 관리·감독을 맡은 대전서부교육지원청은 학부모의 지속적인 민원 제기에도 ‘단순 민원’으로 판단, 현장 조사 등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신문고에 동일한 민원이 7건이나 접수됐는데도 담당 장학사와 과장·교육장 등이 안이하게 생각했다는 게 교육청 판단이다.

대전시교육청 담당에 설동호 대전시교육감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신진호 기자

대전시교육청 담당에 설동호 대전시교육감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신진호 기자

대전교육청 이차원 감사관은 “해당 보호자 안전조치와 접촉 최소화, 학교교권보호위원회 개최 등 조치가 미흡했던 것을 확인했다”며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비위 관련자를 엄중하게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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