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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재판 지연, 인사 편중 논란…김명수 6년 많은 숙제 남기고 퇴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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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8호 10면

김명수

김명수

김명수(64·사법연수원 15기·사진) 대법원장이 22일 퇴임식을 가졌다. 6년 전 대법원장 후보로 나서며 도종환 시인(현 국회의원, 당시 문체부 장관)의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길』을 읊었던 그는, 떠나는 날에는 ‘좋은 재판의 길’을 말했다. 그의 퇴임사를 통해 김명수 6년을 되짚어 봤다.

“6년 전 사법부와 관련된 대내외적인 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엄중했던 상황에서, 국민은 제게 16대 대법원장의 막중한 소임을 부여했습니다.” 2017년 8월은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번지던 때였다. 법원행정처가 진보 성향 법관들이 다수 포진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탄압하려 했다는 의혹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거듭된 조사에도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을 깜짝 발탁했다.

“새로운 사법의 길은 그 길을 찾아가는 절차와 방식에서부터 이전과는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김 전 대법원장은 법관 인사 체계의 근간에 손을 댔다. ‘법관의 꽃’이라 불린 고등부장을 더는 임명하지 않았고, 고등부장을 각급 법원장에 보내는 대신 각 법원 투표를 거쳐 추천을 받았다. 이를 개혁으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고등부장 승진제 폐지로 구성원들이 일할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와 법원장 자리를 사실상 인기투표에 맡겼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권위를 앞세우는 지도자이기보다는 누구와도 대화하고, 경청하며, 서로의 견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열린 동료가 되고자 하였습니다.” 법원행정처를 정점에 두고 수직적으로 움직이던 법원의 조직이 김 전 대법원장 이후 수평화됐다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법원 내부의 의사결정이 민주화됐다는 평가도 있지만, 인적 자원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못해 편중과 비효율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작지 않다.

“그렇지만 ‘좋은 재판’을 실현하는 과정은 곳곳에 암초가 도사린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김 전 대법원장은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 19를 재판 지연의 주범으로 꼽기도 했다. 김 대법원장 취임 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해소였으나, 그는 후임자에게 ‘극심한 재판 지연’이라는 못지않은 난제를 남겼다.

“지난날 사법행정이 저지른 과오가 우리 사법의 역사에서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법원 자체 조사는 양 전 대법원장 때 1·2차, 김 대법원장 이후 3차로 이어졌다.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해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조사자료를 제공하겠다(2018년 6월 대국민 담화)”던 그는 말을 실천에 옮겨 모든 자료를 검찰에 내줬다. 그 결과는 헌정사상 첫 전직 대법원장 구속기소였다.

“훌륭한 신임 대법원장님과 함께 사랑하는 법원 구성원 여러분이 ‘좋은 재판’의 길을 실현하는 여정을 계속해 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김 대법원장의 퇴임사는 ‘훌륭한 신임 대법원장’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아직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투표도 이뤄지지 않아 당장 25일부터 안철상 선임 대법관이 권한대행을 맡는다. 내년 초 세 명의 대법관이 임기를 마치고 법관 인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장기화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법조계에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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