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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맥이 흐르는 「한핏줄 정서」/북한음악인의 공연을 보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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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묘향산 석간수빛 같은 투명한 음색/개량된 악기·음체계 서구화도 눈길
1990년이라는 세월의 빗장이 열리던 날 백두와 한라의 산허리에 쏟아지는 동녘의 햇살은 유난히도 성서롭고 눈부셨다.
정한수로 손을 씻고 새해 원단의 새벽길을 쓸던 날 우리의 가슴은 너무나 벅차고도 설레ㅆ다.
왠지 『금강산에 다녀오셨다지요』라는 덕담이 실감남직한 반가운 「까치소식」이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백예순날의 한해가 덧없이 저물려는 섣달 초순의 어느날 드디어 통일의 전령이요,민족화합의 사절이랄 「반가운 까치」들은 서울에 날아왔다.
성동춘 단장이 이끄는 평양 민족음악단 일행이 바로 그들이다.
북녘의 음악가들이 서초동 우면산 자락에다 풀어놓은 음악의 메시지들은 무엇보다 앞서 아름답고 의미심장했다. 우선 그들의 음악 자체도 아름답다. 인민배우 김진명,공훈배우 김관보·백영희씨를 비롯한 승영희·리성훈·리순덕·배윤희·장애란·백순희씨의 노랫결도 아름답고 김길화씨의 옥류금,리순화씨의 가야금,전동환씨의 단소 음색도 여간 곱지가 않다.
성악이나 기악을 막론하고 전체적인 음색이 투명하다는 점이 우선 두드러졌다.
노래의 발성도 텁텁하고 서민적인 남도의 판소리적인 빛깔과는 달리 수정처럼 해맑고 깔끔하다. 그것은 호남들의 흙내음 싣고가는 희뿌연 도랑물빛이 아니라 기암절벽의 묘향산 바윗골을 졸졸 흘러가는 석간수의 물빛 바로 그것이다.
단소도,가야금도,옥류금도 소리 빛깔이 투명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남한의 현악기에 비해 재질도 단단하고 줄도 철사를 넣어 팽팽히 죄어 놓았으니 한결 소리가 맑아질 수 밖에 없다.
가을 하늘처럼 투명한 서도지방 특유의 산자수려한 풍광의 음악적 변형임이 분명타고 하겠다.
마치 우리의 경우에도 서도소리 창법에서만은 투명한 콧소리(비성)를 특징으로 하듯이 말이다.
더욱 아름답고 반가웠던 것은 비록 반세기동안의 단절을 통한 음악적 기념이나 양식의 편차는 드러나 보였지만 그들 저변에 흐르는 민족공통의 정서적 원형질이나 예술적 인자들은 맥맥이 이어내리고 있음을 십분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이다. 대부분의 악기들이 개량되고 음체계도 서구적 평균율을 준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외관속에 담긴 내용들은 어제의 우리를 닮은데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감성의 색깔이 그렇고 표현의 시김새가 그러하며 신바람의 후예다운 멋스런 내재적 율동이 또한 그러하다.
형식이 내용을 규제한다지만 역시 내용이 형식을 뛰어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 내용이란 우리 예술의 전통적 속성 내지는 단일민족으로서의 혈연적 동질성을 의미함은 물론이다.
그러기에 남북의 음악인이 부질없고 쩨쩨한 인위의 벽을 헐고 절대 자유의 예술인으로 한데 어우러져 펼친 9일밤 「90 송년통일 전통음악회」는 더욱 아름답고도 감격적이었으며,그래서 한층 『통일의 전주곡』(성단장 표현),다시 말해 분단의 아픔을 가셔내고 도도한 민족사의 본류로 합류해가는 하나의 상징적 대동놀이요,역사적인 통과제의만 같아 더욱 진한 감격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한명희 서울시립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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