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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경쟁에서 협력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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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서이초 교사의 죽음으로 표면 위로 드러났다. 교육계에서는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고, 정치권에서도 이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마땅히 해야 할 시급한 일이다. 이는 병에 걸렸을 때 적절한 처방전에 따라 약을 먹는 과정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성인병이 생겼는데, 약으로만 상태가 호전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건강하고자 한다면 생활 습관을 고치려는 노력이 약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문명은 신뢰와 협력의 역사
현대에 들어 더욱 중요해져
경쟁에 지친 교육서 벗어나
협력·협업의 가치 알려줘야

일차적으로는 법의 허점을 고치고 제도를 정비해야 하지만, 건강한 교육 환경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원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외신 기자는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우리 사회가 지나친 경쟁사회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가 지나치게 과도한 경쟁에서 비롯됐음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우리 교육은 자기 계발이 목표가 아니라 남보다 앞서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이를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심각하게 고민하지는 않는다.

시인 소동파는 여산(廬山) 안에서는 여산의 참모습(眞面目)을 볼 수 없다고 했는데, 우리도 마찬가지다. 아주 오랫동안 경쟁이란 상황에 길들어져 와서 서로 경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심지어는 치열하게 경쟁할수록 더 크게 발전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처럼 경쟁에 대해 호의적인 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가 오래전부터 과거 제도를 시행했던 역사 때문인지 모른다. 시행상의 문제점과 제도적 한계가 많았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보면 경쟁의 사회적 순기능이 작동할 수 있는 장치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평가절하하더라도 명문가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자기 노력이 부족한 후손에게 세습되지 않게 하는 역할은 했기 때문이다.

경쟁의 순기능을 인정하더라도 인류 사회의 진보와 번영이 경쟁에서 말미암은 것 같지는 않다. 인류는 10만 년 전까지는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신체적인 면에서만 보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고 할 만큼 생존에 취약하고 특별한 신체적 능력을 갖춘 것도 없다. 이는 늑대 한 마리하고 마주쳐도 혼자서 살아남기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수긍하게 된다. 신체적으로는 취약하지만 지금 인류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영역으로 거주지를 확장했고 생명 세계 전체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그건 인류가 서로 협력하는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늑대 한 마리하고 싸워도 이기기 힘들지만, 여럿이 협력하면 사자 무리와도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생존을 위한 협력이다. 10만 년 이전의 전기구석기 시대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필요했다.

수렵과 채집으로 살았던 인류사의 99%를 차지하는 긴 기간에도 협력은 생존과 식량 조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 후 농업혁명을 거치면서 상호 협력은 인류 사회의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됐다. 농경과 목축으로 식량을 능동적으로 확보하게 한 농업혁명 이후, 큰 강 주위에선 대규모 관개 농업이 발전하게 됐다. 구대륙의 큰 강 유역으로 인구가 모이면서 도시가 형성됐다. 대규모 농업으로 식량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지식인 등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이 생겨나고, 이들에 의해 도시 문명이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문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도시에 형성된 연관과 의존의 사회 관계망은 상호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것이어서, 협력은 예전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인류 문명은 그 후 축의 시대(axial age), 르네상스, 과학혁명,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른다.

인류 문명은 상호 신뢰와 협력의 역사다. 문명이 진보하고 사회 관계망이 촘촘해지면서 신뢰와 협력은 점점 더 중요해졌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협력보다는 경쟁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 돌을 깨트리거나 갈아서 석기를 만드는 정도는 혼자서도 할 수 있겠지만, 청동기나 철기를 만드는 정도만 돼도 혼자 하기는 어렵다. 하물며 우주와 심해를 탐사하거나 반도체나 자동차, 휴대폰을 만드는 일을 어떻게 혼자 할 수 있겠는가? 에디슨이 혼자서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 오늘날엔 노벨상도 대부분 공동 연구한 연구진이 수상한다. 다른 사람과 협력하면 훨씬 좋은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교육이 협력보다 경쟁을 부추긴다면, 이는 청동기나 철기 시대에도 못 미치는 석기 시대의 교육을 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역량이 대학 시절 이후 급속히 떨어지는 것도 모두가 경쟁에 지쳐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는 경쟁보다 협력을 강조하고, 경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면서 서로 협력하는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