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감세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이현상 논설실장

이현상 논설실장

7, 9월마다 나오는 주택분 재산세 고지서를 받고 놀랐다. 지난해보다 40% 가까이 줄었기 때문이다. 20% 정도 경감될 것이라는 정부 발표는 있었지만, 훨씬 더 큰 폭이었다. 집값 내린 탓이 컸다. 그러나 공시가격현실화율이나 공정시장가액비율 같은 부과 기준도 내렸다. 세금 적게 내는 건 좋은데, 이래서 나라 살림이 제대로 될까 살짝 걱정됐다.

경제 침체로 세수 펑크 59조 예상
저성장 시대 구조적 문제 될 수도
재정 역할 커지는데 감세만 고집
경제에 득일지 실일지 따져봐야

종부세 내보는 게 소원(?)인 처지에서 이런 걱정이 오지랖일 수도 있겠다. 고가 주택이나 다주택자의 체감 경감 폭은 훨씬 더 크다. 국회예산정책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공시가격 15억원인 1주택자의 보유세(종부세 포함)는 2021년 450만원에서 올해 265만원으로 줄었다. 조정대상지역에 공시가격 7억5000만원짜리 아파트 두 채를 가진 사람의 보유세는 1473만원에서 358만원으로 1115만원이나 깎였다.

올해 ‘세수 펑크’가 59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계가 나왔다. 작년 예산을 짤 때 생각했던 국세 수입과 14.8%나 차이 난다. 세금이 너무 많이 걷힌 재작년과 작년에도 두 자릿수 오차율이었다. 대규모 나라 살림을 정확히 가늠하기란 쉽지 않을 거다. 그래도 오차율은 통상 5~6% 정도였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요동쳤다는 방증이겠지만, 세수 당국의 실력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부족분을 지난해 남긴 돈(세계잉여금), 올해 남길 돈(불용액), 다른 주머닛돈(기금 여유 재원) 등으로 막겠다는 생각이다. 미봉책이다.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특히 외환 방파제 격인 외국환평형기금을 허물어서 세수 부족분을 메우겠다는 발상은 위험하기조차 하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멈추고 약달러 기조로 돌아서면(환율 하락) 외환 대책의 손발이 묶일 수 있다.

세수 펑크로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된 것이 감세 정책이다. 야당은 세수 펑크의 원인 중 하나로 ‘부자 감세’를 지적한다. 정부는 억울해 한다. 감세 때문이 아니라 예상 밖 경기 침체와 부동산 위축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구조적 저성장 전환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피크 코리아’라는 말이 나오는 판이다. 만성적 세수 부족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감세가 경제를 살릴 수 있느냐는 경제학계의 묵은 논쟁거리다.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정부 감세 정책의 근거에는 ‘래퍼 곡선’이 있었다. 세수와 세율의 관계를 ‘역(逆) U’ 자 모양으로 그린 곡선이다. 적정 세율(뒤집어 놓은 U자의 정점)을 지나면 세율이 높을수록 세수는 오히려 줄어든다는 설명 틀이다. 직관적으론 그럴듯해 보여도 현실 적용은 ‘글쎄’였다. 무엇보다 세수가 정점을 이루는 적정 세율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레이건 정부는 최고 소득세율을 70%에서 28%로 낮추는 등 감세 정책을 폈지만 임기 중 재정 적자는 더 커졌다. 그 고통을 빈곤층이 떠안았다. ‘복지 여왕’이라는 말로 조롱당하기까지 했다. 민주당 성향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부자 감세론에 대해 ‘때만 되면 되살아나는 좀비 경제학’이라는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런 독설까진 아니더라도 감세가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생각은 따져볼 게 많다. 윤석열 정부는 지속적 감세 정책을 펴면서 법인세, 소득세, 종부세, 가업상속공제 등을 손봤다. 자녀 결혼 자금에 매기는 증여세까지 완화했다. 지난해 세법 개정을 통해 5년간 줄어드는 세수가 60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작년만큼 크진 않지만 올해도 2028년까지 5년간 3조원 넘는 감세안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곳간이 비면서 꼭 써야 할 데도 못 쓰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16.6%나 삭감한 게 대표적이다. R&D 예산은 외환위기 때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줄어든 적이 없었다. 농부가 굶어 죽어도 베고 죽는다는 종자 같은 것이었다. 이런 예산이 ‘카르텔’ 딱지가 붙어 싹둑 잘려나갔다.

감세를 우습게 보면 큰코다친다. 지난해 9월 리즈 트러스 당시 영국 총리는 섣부른 감세안을 발표했다가 후폭풍으로 취임 50일 만에 사퇴하고 말았다. 부족한 세수 대책이 없어 파운드화 폭락 등 대혼란을 겪었다. 세출을 줄이고 이런저런 방편으로 막아 보겠다는 우리 정부와는 다르다지만, 결국 임시변통이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부자 감세’라는 말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지만, 쉽게 볼 프레임이 아니다. 세금이란 게 본래 부자들의 몫이 큰 만큼 감세 혜택 역시 이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감세의 낙수 효과가 진짜 있는지, 거둘 덴 거두고 깎을 덴 깎고 있는지, 사회적 위화감 같은 부작용은 없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재정의 역할은 외면한 채 감세라는 사탕만 남발하면 경제는 기능 부전(不全)에 빠지고 만다. 우파=감세, 좌파=증세라는 낡은 도그마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유연하게, 실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