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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심야 문자…‘영화 아버지’ 변희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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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원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너무 많은 기억이 스쳐 갑니다.” 원로배우 변희봉(1942~2023)이 별세한 18일, 자정이 다돼 이런 문자를 받았다. 발신인은 봉준호 감독. 봉 감독은 빈소가 차려지자마자 찾아가, 늦게까지 현장을 지켰다.

봉 감독은 추도사 요청에 회답한 이 문자에서 “선생님과 17년간 4편의 작품을 할 수 있었던 건 저에게 큰 행운이었다”며 “위대한 배우, 해학이 넘치던 분” “아버지 같은 분”이라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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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봉은 봉준호 영화의 ‘아버지’였다. ‘괴물’에서 한강 괴물을 몸으로 막아선 박희봉의 “가!” 외마디 대사에 1300만 관객이 눈물을 훔쳤다. 음험한 세상을 해학으로 풀어간 봉준호표 블랙코미디를 처음 꽃피운 이도 변희봉이다. 봉 감독이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서 ‘수사반장’ 악역 시절 팬이 된 그를 캐스팅하려고, 없던 역할을 만들어 넣었다는 ‘변 경비’(사진) 캐릭터다. 아파트 지하에서 개를 잡아먹는 이 살벌한 경비원은 1980년대 아파트 날림공사 시비를 가리려다 살해당한 보일러 김씨 일화를 마치 은밀한 증언처럼 들려준다. “보일러 돈다잉~잉” 하는 익살맞은 명대사와 함께.

두 사람이 6년 전 마지막으로 함께한 ‘옥자’에서 두메산골 할아버지 희봉은 손녀 미자와 수퍼돼지 옥자가 자매처럼 자란 과정을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이기도 했다. ‘옥자’ 촬영 당시 변희봉은 “산에 풀어 놓고 키운” 옥자에 대해 이런 애드리브를 덧붙였다. “뱀도 먹고, 쥐도 먹고, 거미도 먹고….” 결국 편집됐지만 봉 감독이 들려준 일화다. 세상은 노배우가 감독을 잘 만나 뒤늦게 꽃피웠다지만, 희비극이 교차하는 ‘봉테일 월드’에서 변희봉이야말로 가장 열정적인 지지자 아니었을까. “너무 감사드리고, 벌써 그립습니다.” 봉 감독의 애도가 절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