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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재명, ‘불체포특권 포기’ 대국민 선언 지켜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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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9일 검찰 출석했지만 진술·날인 거부해 논란

‘특권 포기’ 약속대로 진정성있는 자세 보여야

정치인이 국민을 사로잡는 가장 큰 무기는 진정성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검찰 수사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자기희생과 헌신을 통해 진정성을 입증하는 정치인의 자세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제1 야당 대표의 지위를 활용한 정치공학과 변호사로서의 지식을 이용해 법망을 피해 가는 ‘테크니션’의 이미지만 강하다. 위기의 순간마다 상황을 만들어 검찰 수사를 헝클어뜨리는 행태가 형법 교과서를 써도 될 수준이란 지적까지 나온다.

대장동·백현동·대북송금 등 숱한 의혹에 휩싸여 온 이 대표는 올 들어 네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그때마다 묵비권을 행사했다. 지난달 말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다섯 번째 조사를 앞두고는 “까짓 조사, 백 번이라도 당당하게 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그가 보여준 모습은 정반대였다. 당초 수원지검은 지난달 30일 출석을 요구했지만 이 대표 측은 24, 26일을 고집해 1차 조사가 무산됐다. 검찰이 다시 4일 출석을 요구했지만 이 대표 측은 본회의를 이유로 11~15일 출석을 주장해 2차 조사도 무산됐다. 앞서 민주당은 8월 임시국회 회기를 31일에서 25일로 앞당겨 종료하는 수정안을 통과시켜 여당의 반발을 샀다. 비회기 기간에 검찰에 구속영장 청구의 길을 열어줘 가결 가능성이 작지 않은 체포동의안 표결을 피하려는 편법을 쓴 것이다. 피의자가 검찰 소환 시점은 물론 영장 청구 시기까지 정하겠다는 것으로,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갑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와중에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난데없이 무기한 단식을 선언해 검찰의 수사 시간표를 순식간에 마비시켰다. ‘국민항쟁’이란 이유를 댔지만, 명분을 찾기 힘들고 단식 중단 조건도 불분명해 수사를 회피하려는 ‘방탄 단식’이란 의구심을 피할 수 없었다.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자 이 대표는 단식 열흘째인 9일 대북송금 의혹 피의자 신분으로 수원지검에 출석했다. 하지만 8시간 조사 내내 구체적 진술을 거부하고, 조서에 날인도 하지 않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세 번 연속 조사를 거부하면 체포영장이 청구될 조건이 충족되니 조사받은 시늉만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대표는 6월 국회 대표연설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었다. 그런데도 8월 검찰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고 일방적으로 9월 출석을 통보하는 등 국회의원 특권 뒤에 숨는 행태를 반복하더니 단식 카드까지 꺼냈다. 169석 원내 1당 대표가 이래선 안 된다. 명분 없는 단식투쟁 대신 약속대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고 수사에 성실히 임하기 바란다. 정말 떳떳하다면 수사에 불응할 이유가 없지 않나. 민주당도 이 대표의 사당(私黨)이 아니라면 그의 단식과 관계없이 정기국회에서 민생 입법에 앞장서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