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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위기의 학교, 암울한 우리 공동체의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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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0일 오후 대전 유성구의 한 초등학교에 마련된 분향소. 며칠 전 이 학교 교사는 극단 선택을 했다. 김성태 기자

10일 오후 대전 유성구의 한 초등학교에 마련된 분향소. 며칠 전 이 학교 교사는 극단 선택을 했다. 김성태 기자

교권 침해·학교폭력은 책임·의무가 실종된 방종 때문

국민이 함께 시민적 덕성·역량 키우는 학교 만들어야

대전의 40대 여교사가 또 극단 선택을 했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이로 인한 경찰 조사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해당 학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은 댓글 등 비난이 잇따르자 문을 닫았다. 지난 7월 서이초 교사의 극단 선택 이후 서울, 경기, 충북, 전북 등 각지에서 교사의 사망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

한편에선 배우 김히어라의 ‘일진’ 논란이 뜨거운 이슈다. 그는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다룬 드라마 ‘더글로리’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앞서 정치권에선 방송통신위원장과 전 국가수사본부장 아들의 학폭 논란이 이슈였다. 2000년대 이후 정부가 수십 번의 학교폭력 대책을 내놨지만 근절은커녕 수법만 더욱 교묘해져 가고 있다.

지금 학교는 약육강식의 무질서 공간이다. 학교를 종횡하는 논리는 오직 입시만을 복음처럼 여기는 치열한 경쟁주의와 자식만이 전부인 부모들의 ‘내 새끼 지상주의’뿐이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것이 대학 입시로 귀결되고, 모자란 학업은 사교육으로 채울 테니 ‘금쪽같은 내 새끼’는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들이 팽배해 왔다.

교권 침해와 학교폭력 모두 방임적 권리만 강조하고 책임과 의무가 실종된 현실에서 자라났다. 질서와 규율이 무너지니 학교는 아노미 상태다. 그러나 이는 단지 교사와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가 어른을 닮듯 학교는 사회를 반영한다. 고도의 압축성장을 거치며 외형적으론 커졌지만 정신적으론 성숙하지 못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 학교다.

악다구니만 쓰는 정치권의 저질적인 행태, 끊이지 않는 사회 지도층의 갑질과 내로남불, 물질만이 성공의 잣대인 천박한 배금주의가 스며들어 학교를 괴물로 만들고 있다. 이런 모습만 보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미래는 더욱 암울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꾸지 않는다면 더 많은 학교폭력과 더욱 심각한 교권 침해를 경험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학교는 공동체의 미래이기 때문에 국민의 가치와 철학 중 정수만을 꼽아 학교과정에 담는다. 선진국의 교육철학이 단순히 학업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에만 있지 않고, 시민적 덕성을 함양하는 데 더욱 집중하는 이유다. 선진국 학교일수록 올바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관용과 협업의 역량을 기르는 데 큰 힘을 쏟는다.

하버드대의 덱스터게이트엔 학교로 들어올 때는 “교정에선 지혜를 키우고” 밖으로 나갈 때는 “더 나은 인류·사회를 위해 봉사하라”고 쓰여 있다. 학교에서 배울 것은 지식뿐이 아니며, 졸업 후에 할 일 역시 일신의 양명만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 교육의 목표는 과연 무엇인가. 교사와 학교, 교육부만이 아니라 시민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 대안을 찾아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