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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엄마 시신 옆 며칠째 굶은 아이…여전한 복지행정 구멍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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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해 사망한 '수원 세모녀'의 발인식. [연합뉴스]

지난해 사망한 '수원 세모녀'의 발인식. [연합뉴스]

사망 한 달 전 집 앞에 찾아갔지만 못 만나

촘촘한 위기가구 발굴 노력과 시스템 필요

엊그제 전북 전주의 한 빌라에서 40대 여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부검 결과 사인은 동맥경화로 추정된다. 부패한 시신 옆에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던 아이는 며칠째 끼니를 거른 상태였다. 아이는 병원에서 깨어나 울먹이며 엄마를 찾았다고 한다.

경찰은 A씨에게 일정한 직업이 없고, 전기·가스비와 집세 등이 체납된 사실로 미뤄 장기간 경제적 고통에 시달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집 안에는 각종 공과금 독촉 고지서와 생활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세입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빌라 주인의 신고가 없었다면 발견은 더욱 늦어졌을 것이다. 아이의 운명 또한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안타까운 것은 A씨가 이미 정부의 위기가구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다. 2014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가구를 발굴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공과금 등 34가지 항목 중 일부를 3개월 이상 연체하면 위기가구로 지정돼 긴급 생계지원비 등을 받는다. 관할 시·군·구에도 통보한다.

실제로 전주시는 지난 7월 보건복지부에서 A씨의 명단을 넘겨받았다. 안내문 발송 후 답신이 없자 지난달엔 주소지까지 찾아갔다. 그러나 전입신고 당시 호수를 기재하지 않아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이날 시의 담당자들이 만약 빌라의 다른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수소문해 A씨를 찾아 만났더라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벼랑 끝의 위기가구를 돕는 복지행정은 늘 한 발짝씩 늦는다. 지난해 사망한 수원 세 모녀도 주민등록지와 실주거지가 달라 혜택을 못 받았다. 이번 사건으로 전입신고 시 주소를 동·호수까지 상세히 적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 개선도 필요하지만 제도를 운영하는 이들의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하다. 보다 적극적인 복지행정으로 위기가구를 돌봐야 한다.

구멍 뚫린 제도의 허점을 계속 보완해 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복지제도는 당사자가 직접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A씨처럼 위기가구로 지정돼도 혜택을 못 받는 사례가 여럿이다. 생활고에 처한 이들은 채무 등 문제로 주민등록지와 다르게 실주거지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지역 사정에 밝은 주민들을 활용해 위기가구 발굴을 돕는 유연한 제도 도입을 검토해 볼 수 있다.

A씨 곁에 있던 아이가 출생신고돼 있지 않은 점은 또 다른 구멍이다. 지난 6~7월 정부의 ‘그림자 아동’ 전수조사 때도 빠져 있었다. 엉덩이가 짓무르지 않게 여름용 기저귀를 채울 만큼 정성스레 아이를 돌봤지만, 가족관계증명서엔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지난 7월 출생통보제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보호출산제 등 더욱 촘촘한 대책이 시급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