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중앙채용비리위원회’ 오명 선관위, ‘60년 고인 물’ 싹 빼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7년간 162회 채용 중 104회 비리, 58명 부정 합격”

위원장 상근 및 외부 감사 상설화 등 대수술 절실

11일 공개된 국민권익위 조사 결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한사코 외부 감사를 거부해 온 이유를 능히 짐작하게 해 준다. 권익위 전수조사에 따르면 선관위가 최근 7년간 채용한 경력직 공무원 384명 중 58명(15.1%)이 부정 채용되는 등 총 162회의 채용 가운데 104회(64%)에서 비리 의혹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권익위는 검찰에 28명을 고발하고, 312건을 수사 의뢰했다.

권익위에 따르면 1년 임기 공무원으로 먼저 채용된 뒤 면접 등 시험을 봐야만 임용되는 정규직 공무원직에 무시험으로 전환된 이가 31명에 이른다. 행정고시급인 5급 시험에 합격해야 임용되는 일반직 5급 공무원으로 전환된 이도 3명 있었다. 또 선관위 내부 게시판에만 뜬 공고를 보고 응시해 7~9급 공무원에 채용된 이도 3명이다. 10일 이상 띄워야 할 채용 공고를 4일만 하고 채용한 경우도 적발됐다. 선관위에 ‘아빠’가 근무하는 등 연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뿐이 아니다. 응시 제한 연령(35세)을 넘긴 합격자가 4명에 이르는 등 자격 미달인데도 합격한 이가 13명에 달했다. 외부인이 맡아야 할 면접위원을 선관위 직원들이 맡은 경우도 26건이나 됐다.

그런데도 중앙선관위는 공무원법상 의무조항인 인사 자체 감사를 7년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5월 중앙일보 보도로 선관위 사무총장·차장 자녀의 특혜 채용 의혹이 드러나자 의혹이 제기된 선에서만 내부 감사를 실시해 4명을 수사 의뢰하고 4명을 징계하는 데 그쳤다. 이에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했지만,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란 이유로 거부하고 강제력 없는 권익위 조사만 받겠다고 버티다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자 ‘이번 사안에 한해서만’ 조사·감사를 수용하겠다고 물러섰다. 그러나 권익위의 자료 요구는 대부분 거부했고, 직원 3000명 중 41.1%만이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했다고 하니, 권익위가 이번 조사에서 적발한 비리는 ‘빙산의 일각’일 수밖에 없다.

노태악 선관위원장과 선관위원들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이런 선관위에 내년 총선 관리를 맡긴다면 결과를 신뢰할 국민이 있겠는가. 선관위는 직원만 3000명에 전국 17개 시·도와 249개 지역구에 사무실을 둔 공룡 조직이다. 단속권도 수사기관급이라 국회의원들도 눈치를 본다. 이런 막강한 기관의 수장을 대법관들이 비상근으로 맡은 가운데 사무처 공무원들이 인사·재정을 장악하고 있다. 외부 감시마저 전무하니 부패와 비리가 발생하지 않으면 이상할 뿐이다. 감사원 등 외부의 감시를 상설화하고, 선관위원장을 상근직으로 전환해 책임 행정을 실현하는 것만이 답이다. 60년 ‘고인 물’ 선관위가 ‘헌법기관’을 내세워 개혁을 거부할 단계는 지나간 지 한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