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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가상자산 전수조사에서 가족 뺀 의원들의 몰염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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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5월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의원의 가상자산 자진신고 및 조사에 관한 결의안'이 통과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지난 5월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의원의 가상자산 자진신고 및 조사에 관한 결의안'이 통과되고 있다. 김현동 기자

국민권익위원회가 다음 주부터 석 달 동안 국회의원 가상자산 전수조사에 나선다. 권익위는 어제 가상자산 취득 및 거래, 매매 현황은 물론 입법 법안과의 이해충돌 여부도 따져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맹탕 조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권익위 스스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할 지경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전수조사 대상을 의원 본인으로 제한하고, 배우자 등 가족에 대해선 조사하지 못하게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김남국(무소속) 의원의 ‘코인 투기’ 의혹이 공분을 불러일으키자 지난 5월 국회 본회의에서 권익위에 전수조사를 의뢰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않다가 최근에야 정보 제공 동의서를 권익위에 제출했다. 그런데 배우자와 자녀, 부모를 정보 제공 대상에서 쏙 빼버렸다.

가족의 코인 보유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의원들이 차명으로 가상자산에 투자하면서 이해충돌 비난을 피했을 가능성 때문이다. 김남국 의원의 코인 사태 이후 자발적으로 가상자산 보유 및 거래 내역을 신고했던 여야 의원 11명 중 8명이 가상자산 관련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나타났었다. 가상자산산업 육성이나 과세 유예, 투자자 보호 관련 등 코인 소유자에게 유리한 내용이 많았다. 혹시 미공개 정보를 넘겨 코인을 거래하도록 했는지도 조사하려면 가족 조사는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오염수 방류 등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하는 여야가 이권 앞에선 한목소리를 냈다.

인사혁신처가 입법 예고한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1급 이상 공직자는 재산 등록 때 1년간의 가상자산 거래 내역을 신고해야 한다.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의 가상자산 정보도 제출해야 한다. 이 법이 연말에 시행되면 국회의원도 마찬가지 기준을 적용받는 만큼 이번 조사에도 같은 기준으로 응했어야 마땅하다.

2021년 LH 투기 사태가 터져 권익위가 국회의원 부동산 거래 전수조사를 벌일 당시 여야는 의원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에 대한 부동산 거래 조사에 동의했었다. 그 결과 불법 의혹이 제기된 여야 의원이 25명이었는데, 이 중 가족 관련이 10여 건에 달했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과 관련해 의원직을 사퇴했던 것과 달리 이번 가상자산 조사를 앞두고 여야는 방어막을 친 셈이다. 지금이라도 가족까지 포함한 조사에 응하는 게 무너진 입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