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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위험한 무기 거래 우려, 김정은·푸틴의 ‘잘못된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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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한 뒤 만찬장에서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한 뒤 만찬장에서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러 정상, 4년5개월 만의 정상회담 가시화

재래식 무기와 핵·우주 첨단 기술 교환할 듯

한반도 평화 파괴 오판 반드시 책임 물어야

지난 10일 평양을 떠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어제부터 러시아 극동을  방문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르면 오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 사람의 만남은 2019년 4월 김 위원장의 블라디보스토크 방문 이후 4년5개월 만이다. 이번 만남은 시점과 의제 등 모든 면에서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궁지로 내몰린 두 나라의 ‘잘못된 만남’이자 ‘악마의 거래’란 비난까지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도발한 푸틴 대통령은 재래식 무기가 부족해 고전하고 있고, 김 위원장은 대북 제재로 경제난이 심각한 와중에 핵미사일 전력 고도화에 집착하고 있다.

이처럼 이해타산이 맞은 북·러 사이에 모종의 무기 거래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이 학수고대하는 곡사포·박격포 포탄 등 재래식 무기를 러시아에 제공하고,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핵추진잠수함·정찰위성의 완성과 실전 배치를 위한 핵심 기술 이전을 러시아에 요청할 것이란 게 공통적 전망이다.

방러 수행원의 면면을 봐도 무기 거래를 염두에 둔 ‘군사적 야합’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 군 서열 1위인 이병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2위인 박정천 노동당 군정지도부장이 눈에 띈다. 특히 재래식 포탄 생산 책임자인 조춘룡 군수공업부장도 포함됐다.

정상회담을 전후한 김 위원장의 예상 동선에서도 방러의 목적과 의도가 첨단 군사기술 이전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일러준다. 외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러시아 해군 태평양함대 모항에서 핵잠수함 기지를 둘러볼 수 있다. 아무르주에 있는 러시아 위성로켓 기술 개발의 핵심인 보스토치니 첨단 우주기지를 방문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처럼 위험한 북·러 거래는 1950년 봄 김일성과 스탈린의 모스크바 회동을 떠올리게 한다. 스탈린은 T-34 탱크 등 당시로선 첨단 무기를 북한에 지원했고, 이를 무기 삼아 김일성은 6·25전쟁을 일으켜 수백만 명의 희생을 초래했다. 만약 러시아가 북한에 ICBM과 핵추진잠수함 등 첨단 무기 기술을 넘기면 이는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공하는 것이어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일 뿐만 아니라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다.

러시아가 유엔의 대북 제재 불이행을 시사한 가운데 미국 정부는 북·러가 무기 거래를 강행한다면 주저 없이 제재하겠다고 공언했다. 평화 파괴 행위에는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제는 무기 거래가 있을 경우 가장 심각한 안보 위협에 직면하게 될 한국의 대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아세안+3’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책임이 더 무겁다”며 러시아에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최근 미·중 갈등이 소강 국면을 보이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을 일방적으로 두둔하지 않고 다소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타이밍에 윤 대통령이 제안한 한·중·일 정상회의가 연내에 성사되도록 외교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북·러 정상회담 대응에 정부의 모든 외교·안보 역량이 집중돼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