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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노­사 지금부터 대화를(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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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물가·고임금의 악순환서 벗어나야
내년도 우리 경제가 그 어느 해보다 어려운 여건에 직면하리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일치된 견해다. 고유가·통상마찰의 격화·시장개방의 확대·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 등 대외경제여건의 악화가 예상되는 데다가 국내적으로도 물가인상을 촉발할 각종 공공요금의 인상과 지자제선거 등이 예정되어 있어 우리 경제는 「내우외환」의 상황에 처할 전망이다.
이러한 경제적 여건 속에서 만약 노사분규마저 격화된다면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한층 더 가중될 것은 말할 것도 없고,지난 87∼89년에 경험한 바 있듯이 그것은 사회불안과 정국의 보수화로 이어져 시대적 과제인 민주화의 진전마저도 가로막게 될 것이다.
그런 정부의 내년도 노사안정대책은 발표가 되자마자 재야 노동권뿐 아니라 노총 등으로부터도 강한 반발에 부닥쳐 내년도의 노사관계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노사안정대책의 골자는 한마디로 한자리 수로의 임금억제다. 우리는 임금문제만을 떼어놓고 생각한다면 정부의 이러한 방침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객관적인 기업경영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판에 임금마저도 크게 상승한다면 우리 경제에 가해지는 압박이 그 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은 누구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물가다. 물가만 안정된다면 근로자들도 한자리 수의 임금인상률을 감내할 수 있겠지만 만약 물가가 실질소득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는 한 그 어떤 논리로도 근로자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그래서 물가상승의 억제를 약속하고는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경험과 예상되는 내년도 경제사정을 감안할 때 근로자들이 정부의 그러한 약속을 선뜻 신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결국 신뢰의 문제로 귀착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물가고가 고임금 요구를 낳고 고임금이 고물가를 낳는 악순환은 해마다 경험해온 것이다.
이를 깨뜨리려면 먼저 정부부터 약속을 지켜야 한다. 물가억제를 약속했다면 반드시 그를 지켜야 하며 그를 지키지 못했을 때는 다음해에는 이에 상응하는 임금인상을 허용하겠다는 각오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도 그저 경영이 어렵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근로자들에게 경영내용을 공개하여 공감을 얻고 이익이 많이 나면 그 만큼 더 근로자들에게 몫을 더 돌리겠다는 보장을 해주어야 한다.
그런 약속이행과 보장은 없이 그저 경제사정이 나쁘니 임금을 억제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자세로는 내년도 노사관계가 원만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근로자들에게 물가억제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나 스스로의 절약자세는 보여줌이 없이 단체협약기간을 2∼3년으로 연장하겠다는 방안을 불쑥 내놓고 있다.
가뜩이나 노사협상이 어렵게 되어 있는 여건에서 이러한 무리수를 들고 나오는 정부의 발상을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방안은 물가가 안정되고 노사화합의 분위기가 정착되어 있는 때라도 관철하기가 어려운 성질의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시점에 그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정부는 평지풍파를 일으킬 것이 아니라 먼저 근로자들의 신뢰와 이해를 얻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년 봄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기업과 함께 대화에 나서 근로자들과 상호 이해와 신뢰의 기반을 넓혀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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