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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한국외교 전환점, 한국외교 시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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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동맹 70주년은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동맹의 지역적 역할에 극적인 진화가 이루어졌다. 8·18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다. 핵심은 유사시 3국이 협의하여 대응을 조율한다는 공약이다. 유사는 공동의 이해에 영향을 주는 역내 위협으로 정의되었다. 회원국에 위협이 있을 때 협의를 규정한 나토 4조와 유사하다. 나토는 5조에서 하나에 대한 공격은 모두에 대한 공격이니 공동대응한다고 했다. 협의와 대응 조율은 강화된 안보협력의 1단계로 여겨진다.

한미일 vs 북중러 대립 심화 땐
비핵·평화·통일은 난관 부닥쳐
한국형 미·중·러 전략 정립해서
중·러와의 외교 공간 모색해야

오랫동안 미국은 이런 안보 구도로 중국에 대처하기를 갈망해왔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중국을 의식하여 신중했으나, 윤석열 정부는 적극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새 정부의 가치 지향성, 북핵 위협, 미·중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미국 측 인사는 감격하여 8·17과 8·19는 전혀 다른 날이라고 했다. 이로써 한미, 미·일 동맹이 연결되어 동맹의 지역적 역할이 강화되었다. 미국은 중국 견제의 망을 촘촘히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의 성과를 살피자면 우선 억지력 강화를 들 수 있다. 주로 달라지는 부분은 중·러 관련이다. 고압적인 중국과 공격적 인상을 더 한 러시아에 대해 한국이 유사시 기댈 곳을 강화한 점이 새롭다. 사드 때 중국의 보복을 혼자 겪은 한국에 원군이 생겼다는 의미다. 한국이 미·중 간 모호성과 중국에 대한 극도의 조심이라는 오랜 관성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도 있다. 그런 관성은 G7급 한국의 국격에 맞지 않는다. 한편 3자 협력이 가져올 경제 기술 분야 혜택도 기대된다.

그러나 한국이 감당해야 할 도전도 만만치 않다. 첫째, 연루(entanglement)의 부담이다. 이제 한국은 대만해협, 동중국해, 경제안보 등 미·중 마찰에 대해 협의하고 대응을 조율해야 한다. 한국의 연루 가능성은 커졌다. 센카쿠(댜오위다오)에서 일·중 마찰이나 쿠릴 인근의 일·러 마찰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미국은 연중 열릴 각종 3국 협의를 주도할 것이다. 미국이 하기 따라서는 안보협력 수위는 예상보다 높을 수 있다. 벌써 미국은 협력범위를 넓게 잡고 있다. 공약에는 공동의 이해에 영향을 주는 역내 위협이 협의 대상인데, 미국은 한 나라에 대한 위협이 있으면 협의한다고 설명했다. 좀 더 나토 식이다. 한국이 공동의 이해가 아니라고 피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둘째, 북·중·러의 반발이다. 북·중·러는 한·미·일 안보협력에 반대해 왔다. 상대적으로 신중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한중, 한러, 남북 관계에 마찰이 예상된다. 한·미·일 안보협력이 북·중·러의 대응을 유발하여 안보 딜레마가 될 수도 있다.

셋째, 국내 여론 수렴이다. 여론은 한·미·일 안보협력에 익숙하지 않다. 특히 일본과의 안보협력에 대한 지지는 낮다. 북·중·러의 반발이 오면 보수-진보 간 논란이 더 심해질 것이다.

이상의 성과와 도전을 볼 때 우리 앞에는 한·미·일 협력의 시대와 북·중·러와의 대립의 시대가 함께 열리는 셈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한국은 특이한 지정학적 이해를 가진 나라다. 분단되어 북핵을 마주하고, 4강에 둘러싸여 있다. 비핵화, 평화구축, 통일 추구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제를 위해서는 미·일과 공조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북·중·러와의 외교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한·미·일과 북·중·러 간 대립이 심화하면 북핵, 평화, 통일은 요원해진다.

한국이 북·중·러와의 외교 공간을 확보하려면 먼저 미·중·러에 대처할 통합되고 조율된 전략부터 정립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진영 구도에서 대미 정책의 이면은 대중 정책이니 분리 운용은 안 된다. 그 전략에는 한·미·일 공조는 어디까지이고 중·러와의 외교 공간은 어느 정도인지에 관한 한국형 좌표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 전략을 가지고 미국과는 한국의 과도한 연루가 한반도 비핵 평화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협의해야 한다. 중·러와도 이들이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 협력의 여지를 남기도록 교섭해야 한다. 비확산 명분에 배치되는 북핵 문제를 미·중, 미·러 대립 분위기에서 떼내어, 공통의 이해 사안이 되도록 고난도 외교를 해야 한다.

한편 국내 여론 수렴을 위해 사회적 소통이 필요하다. 사실 오래전부터 한국은 동맹인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 사이의 행보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해야 했다. 역대 정부는 이를 피했다. 그래서 여론은 이 문제에 생소하고 보수 진보로 분열되어 있을 뿐이다. 이 상태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되었다. 이제라도 국민, 야당과 소통하여 최적의 미·중·러 전략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

캠프 데이비드는 한국외교의 전환점이 되었고, 한국외교는 시험대에 섰다. 대외적으로 북·중·러에 대한 외교방안을 내놓고, 대내적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늘려야 한다. 이는 주로 정부가 할 일이지만, 사회적 논의가 최적의 대처를 도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지도 중요하다. 정부와 사회의 총체적 대응이 긴요한 국면이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