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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정완의 시선

의경 부활? 직업 경찰 강화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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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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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헌법 39조에서 규정한 국방의 의무다. 대한민국 남성으로 태어났다면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국방의 의무를 피할 순 없다. 예전보다 복무 기간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입대를 앞둔 20대 남성들은 여전히 큰 부담을 느낀다. 흔히 병역 면제자를 ‘신의 아들’이라고 부러워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병역제도는 해외에서도 상당한 관심거리다. 여기엔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의 입대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저출산에 병역자원 갈수록 부족
16년 전 의경 단계적 폐지 결정
지금 와서 뒤집으면 부작용 커

이렇게 국방의 의무로 국가의 부름을 받은 청년에게 군인이 아닌 다른 일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 마지막 기수가 전역하면서 공식 폐지된 의무경찰도 그중 하나였다. 전두환 정부에서 제대로 된 법적 근거도 없이 의경을 창설한 지 41년 만이었다. 엄밀히 말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과 경찰 업무를 보조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의경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게 운영했던 독특한 제도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선 이런 식으로 청년 인력을 데려다 쓰는 걸 강제노동으로 규정한다.

의경 폐지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이 아니었다. 벌써 16년 전이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의경 같은 전환 복무 요원의 단계적 폐지 방침을 밝혔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바탕으로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이 앞장서 추진했다. 국방의 의무를 명목으로 불러온 청년들에게 다른 일을 시키지 말고 오직 전투력 강화에만 집중하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변 전 실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를 수차례 만나 노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필요한 예산은 얼마든지 지원할 테니 직업 경찰을 대폭 늘려 의경 폐지의 공백을 메우자고 했다. 그러자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하면서 이런저런 변명만 늘어놨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편하게 부릴 수 있는 인력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의경 대신 직업 경찰을 많이 뽑자고 하는데 그걸 왜 마다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힘들게 설득해서 의경의 단계적 폐지안을 만들었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의경 폐지 일정이 미뤄지긴 했다. 그래도 전혀 없던 일로 된 건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전투·의무경찰을 폐지하라고 경찰청 등 관계 기관에 권고했다. 전·의경 생활관에서 심각한 구타와 가혹 행위로 사망 사건이 잇따른 게 배경이었다. 근무·생활환경 개선 정도로는 부족하고 아예 제도를 폐지하는 게 궁극적 해결책이라고 인권위는 판단했다. 당시 국가인권위원장은 강한 보수 성향의 현병철 전 한양대 교수(법학)였다.

박근혜 정부도 의경 폐지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있다. 2016년 국방부는 의경을 포함한 전환 복무 요원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의경을 완전히 폐지하는 시점은 2023년으로 제시했다. 물론 계획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실천이다. 결국 의경 폐지를 최종적으로 실천에 옮긴 건 문재인 정부였다.

의경 폐지는 역대 정권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청년 인구 감소로 병역자원이 갈수록 부족해지는 게 핵심 이유였다.

저출산 고령화의 심각성은 특정한 이념이나 진영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의경 제도를 처음 만들었던 1980년대 초반에는 같은 해에 태어난 20대 청년이 100만 명에 가까웠다. 그중 절반이 남자라고 보면 연간 50만 명 정도씩 병역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는 턱도 없는 얘기다. 2002년을 고비로 남녀를 합친 연간 출생아 수는 50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연간 출생아 수가 25만 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치안 강화 대책으로 꺼내 든 의경 부활 검토는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첫째는 정책의 일관성 훼손이다. 오랜 과정을 거쳐 폐지한 제도를 불과 몇 달 만에 뒤집는 건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둘째는 치안 대책으로서 실효성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최근의 범죄·테러·재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24시간 상주 자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일은 의경보다는 전문적이고 체계적 훈련을 받은 직업 경찰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그러니 논란의 소지가 많은 의경 부활이 아니라 직업 경찰을 강화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 전에 간부는 넘치는데 현장 인력은 부족한 경찰 조직의 기형적 구조부터 바로잡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