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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재일 광복군과 오사카 요양시설 ‘산보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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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노병의 손은 따뜻했다. 한국에서 한번 찾아뵙겠단 말에 주름이 활짝 펴졌다. 열여섯살 어린 나이에 광복군에 합류했던 오성규 애국지사는 평생 일본에 머물다 백세가 되어서야 한국행을 택했다. “여생을 한국에서 보내고 싶다”는 아버지의 바람.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지난 11일 도쿄 네리마구 한 임대주택. 오 지사의 아들은 푹 고개를 숙인 채 아버지를 한국으로 모시러 온 보훈부 장관의 대화를 들었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그가 알아듣진 못했겠지만, 그는 무릎을 꿇은 채 30여분을 꼼짝하지 않았다. 그 역시 가장으로, 밥벌이의 굴레를 벗지 못해 부친을 보살피는 일은 어려웠다고 한다. 이젠 한국에 가서야 만날 수 있는 아버지. 자식으로, 애달픈 일일 수 있었지만, 그는 “아버지가 원하는 일”이라며 애써 복잡한 감정을 감췄다.

일본 오사카에 있는 재일동포 요양시설 산보람. 어르신을 위해 김치를 내고 아리랑도 불러준다. [사진 산보람]

일본 오사카에 있는 재일동포 요양시설 산보람. 어르신을 위해 김치를 내고 아리랑도 불러준다. [사진 산보람]

#“기적 같은 일이었다니까요? 세상에,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선 거예요!” 수화기 너머로 흥분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일본 오사카에 있는 재일동포 어르신을 위한 요양시설 ‘산보람’ 고경일 대표 얘기다. 휠체어가 없으면 거동이 어려운 재일동포 1세 어르신이 장구 반주에 나오는 우리 민요를 듣자 그만, 벌떡 일어났단 얘기다. 그는 “이게 민족의 피인가란 생각을 했다”고 했다.

고 대표가 소위 ‘자이니치’로 불리는 동포 어르신을 위해 요양시설을 만든 건 1990년대의 일. 일본 정부가 우리로 치면 요양보험제도를 도입했지만, 정작 가난한 자이니치 어르신들이 갈 곳은 없었다. 일제강점기 때 여러 사연을 안고 일본으로 넘어와, 차별과 가난을 딛고 살다 고독사한 1세 이야기가 그를 움직였다. 마지막 순간만큼 살아온 보람이 있도록 모시고 싶은 마음에 ‘산보람’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곳에 머무는 자이니치 어르신들은 45명. 이 중 절반이 자이니치 1세대로 초고령이다. “참 이상해요. 어르신들이 일본어는 다 잊어도 한국말은 안 잊고요, 일본 음식은 못 넘겨도 김치는 드세요.” 아리랑을 부르고, 김치를 담그는 이곳 운영은 쉽지 않은 상태다. 코로나19 여파에다 이용자들의 형편이 좋지 않아서다.

일본의 빠른 고령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우리는 일본 사회 속 비주류로, 일제강점기 때 끌려오듯 넘어와 한국어와 김치로 마지막을 맞고 싶어하는 자이니치 고령자들의 이야기는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주일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일본에 있는 재외국민은 약 48만 명. 이 중 100세 이상의 초고령자는 올해 기준 42명이다. 이들이 어떤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할 것인지, 또 이들의 바람은 무엇인지 이젠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