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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푸둥은 '금융허브' 됐는데…새만금 12조 붓고도 절반이 바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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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1월 28일 전북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서 당시 노태우(가운데) 대통령이 '새만금 간척종합개발사업' 기공식에 참석, 발파 스위치를 누르고 있다. [중앙포토]

1991년 11월 28일 전북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서 당시 노태우(가운데) 대통령이 '새만금 간척종합개발사업' 기공식에 참석, 발파 스위치를 누르고 있다. [중앙포토]

"대선용 급조 공약…정권마다 오락가락"

전북 부안군 새만금 간척지에서 열린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지난 8일 '전원 조기 퇴소'로 파행을 빚자 "도대체 새만금에서 그간 무슨 일이 있었냐"는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정부가 6년간 1000억원 이상 쏟아붓고도 폭염 대책·인프라 부족 등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새만금 사업 자체가 애초 대선용으로 급조된 공약인 데다 역대 정권마다 정책이 오락가락해 개발이 더딜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전북도 등에 따르면 새만금 개발 사업은 전북 군산·김제시, 부안군 등 3개 시군 앞바다에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33.9㎞)를 쌓아 2050년까지 국토 409㎢(토지 291㎢와 담수호 118㎢)를 새로 만드는 '단군 이래 최대 국책 사업'이다. 이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달한다. 1987년 12월 대선 당시 민정당(국민의힘 전신) 노태우 후보가 호남 표를 얻기 위해 처음 공약으로 내건 이후 37년째 대선 단골 공약이다. 하지만 정부 논의 단계에서 사업 타당성이나 예산 검토가 없었던 탓에 환경 오염과 예산 낭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참가자들을 태운 버스가 지난 8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야영장을 벗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참가자들을 태운 버스가 지난 8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야영장을 벗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1991년 착공 후 공사 중단·재개 반복  

새만금 방조제는 1991년 착공 이후 19년 만인 2010년 4월 완공됐다. 서해안 갯벌과 해양 생태계 파괴를 우려한 환경단체 등의 소송으로 공사가 중단·재개를 반복하면서다. 2006년 3월 대법원 판결에서 정부가 승소하면서 그해 4월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났다.

새만금에 대한 청사진은 정권마다 제각각이었다. 노태우 정부는 100% 농지로 활용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김영삼 정부는 '대중국 교두보', 김대중 정부는 '환황해 경제권의 생산·교역·물류 전진기지 구축'을 약속했다. 노무현 정부는 72%를 농지로, 나머지 28%를 비농지로 개발하는 '새만금 내부토지개발 기본구상'을 내놓았다.

'새만금=동북아 두바이'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농지 30%, 비농지 70%로 확 바꿔 농업과 복합도시를 결합한 '새만금종합개발계획'으로 변경했다. 박근혜 정부는 한·중 경협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는 당시 8% 수준인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0%대로 끌어올리는 '재생에너지 3020' 계획을 주도할 전진 기지로 봤다. 윤석열 정부는 2차전지를 비롯한 첨단산업 특화단지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2017년 4월 전북 김제시 새만금 동서2축 도로 건설 현장에 안개가 잔뜩 끼어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2017년 4월 전북 김제시 새만금 동서2축 도로 건설 현장에 안개가 잔뜩 끼어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33년간 12조 투입…70%가 물밑

새만금개발청 등에 따르면 새만금 전체 사업비는 22조7900억원이다. 국비 12조1400억원, 지방비 9500억원, 민간 자본 9조7000억원 등이다. 이 가운데 지난해까지 방조제 공사(2조9000억원)를 제외한 용지 조성과 기반 시설 구축, 수질 개선 등에 들어간 국비만 9조원가량이다.

그러나 매립 속도는 더디다. 새만금 기본계획에 따르면 오는 2030년까지 전체 계획 면적(291㎢)의 78.1%를 개발해야 하지만, 지난 6월 기준 48.0%(139.8㎢)만 매립이 완료되거나 진행 중이다. 매립을 마친 땅은 33.1%(96.4㎢)에 그친다. 반면 새만금과 비슷한 시기에 개발을 시작한 상하이 푸둥(浦東) 지구는 아시아 무역·금융 허브로 우뚝 섰다.

부지 조성이 느리다 보니 새만금에 투자하기로 했던 대기업이 잇따라 사업을 백지화했다. 2016년 5월 OCI 3조4000억원(폴리실리콘 공장), 삼성 7조6000억원(그린에너지 종합산업단지)이 투자를 철회했다. 같은 해 9월 LG CNS도 3800억원 규모 '새만금 스마트팜'을 포기했다. "토마토·파프리카 등 국내 시설 원예 작물 수출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농민 단체 반대에 부닥쳐서다.

2018년 10월 30일 전북 군산 새만금 수상태양광 발전소에서 열린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10월 30일 전북 군산 새만금 수상태양광 발전소에서 열린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 주도권 잡으려 악용 

지역 정치권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새만금을 사실상 악용했다. 김관영 전북지사는 국민의당 국회의원(군산) 시절인 2016년 8월 새만금에 내국인 카지노 허용을 골자로 하는 새만금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당시 송하진 전북지사와 더불어민주당 반대로 무산됐다. 김 지사는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전북 발전을 위해 새만금 카지노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여전히 지역 반발이 커 임기 안에 재추진할 가능성은 0%"라고 선을 그었다.

송 전 지사는 2014년 7월 취임 이후 잼버리 유치에 나섰다. 전북 최대 현안인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과 지지부진한 내부 개발을 촉진하는 '지렛대'로 삼기 위해서다. 그러나 2017년 8월 대회 유치 확정 당시 잼버리 부지(8.84㎢)는 관광·레저용지(31.6㎢)에 포함된 갯벌이었다. 이에 정부는 2017년 12월 해당 부지를 농업용지로 바꿨다. 한국농어촌공사 농지관리기금 1846억원을 끌어다 부지 매립에 속도를 내기 위한 방안이었다.

지난 9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장이 비어 있다. 대원들은 전날 잼버리장을 떠났다. [연합뉴스]

지난 9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장이 비어 있다. 대원들은 전날 잼버리장을 떠났다. [연합뉴스]

"개발 용도·예산 점검해야" 

농어촌공사는 2020년 1월 매립 공사에 착수, 지난해 12월 끝냈다. 잼버리를 불과 8개월 남겨둔 시점이었다. 이 탓에 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부터 야영장 조성까지 줄줄이 늦어졌다. 결국 새만금 잼버리는 열악한 환경과 준비 부족만 여실히 드러낸 채 개막 8일 만에 156개국 3만7000여 명 '전원 조기 퇴영'이라는 파국을 맞았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새만금 사업은 시작부터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 같은 객관적 원칙보다 지역 배려라는 정치적 목적을 우선하다 보니 30년 넘게 우왕좌왕했다"며 "잼버리 유치도 발이 푹푹 들어가는 갯벌만 있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송하진 전 전북지사가 장기적 계획이 아닌 (새만금 개발을 앞당기기 위한) 즉흥적 발상에서 갑자기 추진해 처음부터 무리한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잼버리 파행을 계기로 정부가 일관된 원칙을 세우고 개발 용도와 예산 전반을 총체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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