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폭염·화상벌레…리얼 생존게임 된 잼버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전북 부안군 새만금 벌판에서 열리고 있는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열악한 환경과 운영 미숙으로 지탄받고 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간척지 벌판에서 4만3000여 명이 야영 행사를 하다 보니 한낮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을 피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3일 현재 화상 등 온열, 벌레 물림 환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최대 4000명의 대원단을 파견한 영국·미국·캐나다 등 각국 정부도 이날 주한대사관을 통해 한국 정부에 안전조치를 확인하는 등 사실상 항의했다.

3일 오후 방문한 여의도 3배(8.84㎢) 규모의 간척지에 들어선 대회장은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었다. 조직위가 덩굴 터널 7.4㎞와 그늘 쉼터 1720곳을 만들었지만, 수만 명이 더위를 피하기엔 역부족이다. 대원들은 행사장 중 유일하게 에어컨이 설치된 ‘글로벌청소년리더센터’에 몰렸지만 환자 수용만으로도 비좁았다. 대신 에어컨이 나오는 기념품 가게와 편의점만 북적였다.

대회 직전 폭우로 대회장 곳곳이 습지인 데다 무더운 날씨가 이어져 모기와 화상벌레(청딱지개미반날개) 등 날벌레도 창궐하면서 벌레 물림 환자도 급증했다. 전날(2일) 오후 10시 기준 벌레 물림 318명, 온열 질환 207명 등 992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곰팡이 달걀 받아” “잼버리 병원에 병상 없어 복도서 링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조직위원회는 전날 열린 개영식에서 108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다고 3일 밝혔다. 이날 야영지 내 잼버리 병원에서 온열질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조직위원회는 전날 열린 개영식에서 108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다고 3일 밝혔다. 이날 야영지 내 잼버리 병원에서 온열질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도 전북소방본부가 현장에서 오후 5시까지 온열 환자 31명을 후송했다.

대회 운영 미숙과 시설 미비도 심각했다. 화장실도 부족해 기다리기 일쑤인 데다 제대로 관리도 안 돼 일부는 오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남녀 구분 없이 천으로만 칸막이를 해놓아 내부가 보이는 등 샤워실도 열악했다. 행사 지원을 나온 전북도청 공무원이 “완전 ×판이다. 국제적 망신”이라고 한탄할 정도다.

SNS에선 국내외 학부모와 참가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잼버리 공식 SNS엔 “잼버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냐” “모든 것이 컨트롤되지 않고 있다. 음식은 없고 태양을 피할 방법도 없다. 진정한 혼돈” 등 외국인 부모들의 성토가 올라왔다. 성인 지도자 자격으로 참가한 한 네티즌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이번 잼버리 대회는) 혐한 제조 축제”라고 비판했다.

나무 하나 없는 벌판에 천막·텐트 설치

지난 2일 열사병에 걸렸던 한 참가자는 인스타그램에 “서울 프랜차이즈 카페 매장의 절반도 안 되는 응급실 크기 때문에 베드가 부족해 복도에서 링거를 맞았다”며 “실신한 외국인이 계속 실려 오는데 전쟁통이 따로 없다. 분쟁 지역 진료소인 줄 알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참가 자녀로부터 상황을 전해받은 한 학부모는 “물이 안 나와 새벽 2시까지 못 씻고 있다. 화장실은 관리가 안 돼 역겨워 사용하지 못할 정도”라며 “밥은 맛이 없고 양이 적다. 매장에선 물건을 비싸게 판다”고 전했다. 이어 “아이가 ‘제발 집에 가고 싶다. 데리러 오라’고 한다”며 “외국인 친구들도 ‘너희 나라 수준이 이 정도냐’고 하는데 창피하다고 한다”고 썼다.

남녀 구분이 없고 가림막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야영장 내 샤워시설. [사진 이현운]

남녀 구분이 없고 가림막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야영장 내 샤워시설. [사진 이현운]

중3 자녀를 보낸 40대 이현운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아이가) 더운 것도 더운 건데, 벌레·모기가 너무 많다고 한다”며 “사진을 받아 보고 놀랐다. 갯벌이라 발을 디디면 푹푹 빠진다. 샤워 시설은 천막에서 씻는 거더라. 편의점은 30분 넘는 거리에 있는데 생수 공급도 제대로 안 된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9명이 함께 갔는데 3명은 이미 퇴소했다”며 “주말에 아이를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화상벌레

화상벌레

전날까지 누적 환자 중 벌레 물림(32.1%) 환자가 가장 많았다. 대부분 전북 지역에 서식하는 화상벌레(청딱지개미반날개)에 물린 것으로 전해졌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화상벌레는 ‘페데린’이란 독성 물질을 분비해 피부에 닿기만 해도 화상과 비슷한 염증과 통증을 유발한다고 한다.

그다음은 온열 질환(20.9%)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화장실이 더러워 참가자들이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고 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는데, 탈수 증상이 더 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밖에 일광화상(106명, 10.7%), 기타 피부 병변(73명, 7.4%), 뜨거운 물체 접촉(53명, 5.3%) 등이다.

잼버리 조직위가 지급한 곰팡이가 피어 먹을 수 없는 수준의 구운 계란. [뉴스1]

잼버리 조직위가 지급한 곰팡이가 피어 먹을 수 없는 수준의 구운 계란. [뉴스1]

변질한 음식도 논란이 됐다. 참가자들은 조직위에서 식자재를 받아 직접 해먹는다. 그런데 곰팡이가 핀 구운 달걀이 제공됐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달걀을 까 보니 검정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며 “심지어 제시간에 재료가 지급되지 않아 일정에 차질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또 영내 편의점은 휴지 1롤을 2000원에, 외부에서 2300원인 콜라는 2500원에 판매하는 등 ‘바가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런 난맥상에도 잼버리 조직위가 ‘스카우트 정신’을 앞세워 “큰 문제가 아니다”란 식으로 대처하면서 참가자와 학부모의 불만을 더 키웠다. 조직위 측은 이날 비판이 확산하자 관계자 대동 등 조건으로 행사장 출입을 통제하며 언론 취재까지 제한해 논란이 됐다.

한덕수 “여가부 장관, 끝까지 현장 지켜라”

“대회를 개최한 세계스카우트연맹에선 이런 폭염 상황에 대한 해명이 없었다”(로이터)고 외신까지 비판하자 한덕수 국무총리는 공동 조직위원장인 김현숙 장관에게 “대회가 끝날 때까지 현장을 지키며 참가자 안전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낮부터 현장에 머물며 대회 운영 상황 점검에 들어갔다.

이기순 여가부 차관은 긴급 브리핑에서 “예측했던 것보다 장마도 길고 폭염도 심했다.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조직위는 영내 활동을 줄이는 대신 (영외) 지역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냉방기 및 온열환자 휴식용 헌혈차를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환자 추가 발생에 대비해 군의관 30명, 간호사 60명을 투입하고 150병상을 추가 설치한다. 화장실 청소 인력 240명을 추가 투입해 한 시간마다 청소를 진행하고, 해충 방제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번 잼버리 대회는 “한국과 전북의 미래상을 세계 청소년에게 보여주겠다”(송하진 전 전북지사)며 전북도가 2014년부터 유치를 추진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8월 유치를 확정했다. 전 세계 158개국 4만3225명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다. 예산도 당초 491억원에서 938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지난해 10월 여가부 국정감사 당시 “폭염이나 폭우, 해충 방역과 감염 대책을 정말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는데도 대회 준비가 미흡했단 비판이 거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