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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서이초 '연필사건' 사실"…사망교사 어려움 많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마련된 서이초등학교 교사 A씨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마련된 서이초등학교 교사 A씨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이초에서 사망한 교사가 담당한 학급에서 소위 ‘연필사건’으로 알려진 학생 간 갈등이 사실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 당국은 사망한 교사가 학생 생활지도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4일 교육부는 서이초 교사 사망 사안의 진상규명을 위한 교육부-서울시교육청 합동조사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은 지난 7월 24일부터 8월 4일까지 서이초에서 발표한 입장문과 언론 등에서 제기된 여러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서이초 교원들의 의견을 들었다.

조사 결과 언론 등에서 ‘연필 사건’으로 보도했던 학생 간 갈등은 실제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연필 사건은 교사가 사망하기 약 1주일 전인 지난 7월 12일 오전 수업 중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가방을 연필로 찌르자, 이 학생이 그만하라며 연필을 빼앗으려다 이마에 상처가 생긴 사건을 말한다.

연필사건 외에도 문제행동 학생 더 있었다 

사망 교사의 동료 교사는 “‘연필 사건’ 발생 당일 학부모가 여러 번 고인에게 휴대폰으로 전화했고, 고인은 자신이 알려주지 않은 휴대폰 번호를 해당 학부모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교육부는 “학부모가 고인의 휴대폰 번호를 알게 된 경위, 담임 자격 시비 관련 폭언이 있었는지 여부는 경찰 수사를 통해 확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기록과 동료 교사 증언에 따르면 사망한 교사는 연필 사건에 연관된 학생 2명 외에도 또 다른 학생 2명의 문제행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두 명의 문제행동 학생으로 학기 초부터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교육당국 설명에 따르면 한 학생은 가위질을 하다가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리거나 울부짖는 소리를 내서 교사가 불안해했다고 한다. 교육부는 교사가 학생 어머니에게 연락을 했지만 “집에서는 그러지 않는데 학교에서는 왜 그랬을까요”라고 했다는 동료 교사의 진술도 확보했다.

교육부는 “사망한 교사는 학기 초부터 문제행동 학생으로 인해 생활지도에 어려움이 있었고, 학기 말 업무량이 많았음도 확인했다”고 했다.

앞서 SNS에서 유명 정치인의 이름이 언급되며 연필 사건 학생이 정치인의 가족이라는 의혹이 있었지만, 서이초는 이를 부인한 바 있다. 교육부는 “실제 정치인 가족이 해당 학급에는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교실 교체 요구했는데 묵살”…“무작위 배정했다”

3일 서울교사노동조합이 공개한 서울 서이초 사망 교사가 근무했던 교실의 평면도. 서울교사노조 제공

3일 서울교사노동조합이 공개한 서울 서이초 사망 교사가 근무했던 교실의 평면도. 서울교사노조 제공

앞서 3일 서울교사노동조합은 사망 교사가 교실 교체를 요청했지만, 학교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서울교사노조에 따르면 교사가 “학급의 교실이 너무 어둡고 무섭다”며 교실 시설을 개선하거나 교체할 것을 학교에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교실 벽면 절반에만 창문이 있어 어둡고 환기가 어려워 지난해에도 교원들이 환경 개선을 건의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고인에게 수업 여건이 좋지 않은 교실을 배정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며, 무작위로 배정되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고인이 수업공간 부족에 따른 비선호 교실을 사용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사망 교사, 1순위로 1학년 희망

지난달 20일 서이초에서 발표한 입장문은 대체로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에 따르면 사망한 교사의 학급에서 담임교사를 교체한 적이 없고, 교사는 학교폭력이 아닌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나이스(NEIS) 관련 업무를 맡았다. 또 연필 사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서이초가 밝힌 대로 학교폭력으로 ‘신고 접수된’ 사안은 없었다.

학교 측은 사망한 교사가 1학년을 맡은 것은 “본인의 희망대로 배정한 것”이라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교육계에선 “임용한지 얼마 안 된 초임 교사가 진짜 희망을 밝히기 어려웠을 것”이란 주장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고인의 1학년 담임 배정은 본인의 1순위 희망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서이초 교사 70% “월 1회 이상 학부모 민원·항의 경험”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극단 선택으로 숨진 교사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붙어있다. 뉴스1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극단 선택으로 숨진 교사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붙어있다. 뉴스1

조사단은 서이초 교원 65명을 대상으로 지난 7월 27~28일 이틀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응답자 41명 중 70%가 월 1회 이상 학부모 민원·항의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 7회 이상 경험했다고 답한 교사도 6명이었다.

서이초에서 교권 침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한 교원은 약 49%에 달했다. 이들은 “담임 외 업무 병행, 과밀학급, 지나친 간섭과 막말 등 학부모 응대에 어려움이 있다”, “정서불안, 품행장애, 대인관계 불안 등 부적응학생을 지도하기 위한 지원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서이초 구성원들은 학교 업무를 줄이기 위해 출결 처리 민원 전자시스템 도입, 업무지원 연락 확대, 학급당 학생 수 제한을 요구했다. 교권 보호를 위해서는 민원처리반을 도입하고, 악성 민원을 교육활동 침해로 신고하고 아동학대 관련 법을 개정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부적응학생의 지도를 위해 학부모의 책임을 강화하고 상담·치료를 적극 권장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합동조사가 방학 기간에 이뤄지고 고인의 업무용 컴퓨터, 학급일지 등이 경찰에 이미 제출돼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면서도 “교단에 선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 교사의 죽음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다시는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학교 공동체의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하여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워 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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