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가지도 못한 韓학교에 연봉 넘는 돈 떼였다…베트남인 무슨 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내 일부 대학과 직업전문학교 등이 유학을 희망하는 외국인들의 등록금을 장기간 환불해 주지 않고 버티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해외에 있어 대응이 어려운 데다 관련 정부 기관은 “민사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라 속만 태우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3~6월 베트남 국적 학생 55명이 전북 전주 소재 4년제 사립대학인 A 예술대학교 문을 두드렸다. ‘어학연수(D-4-1)’ 비자를 발급받아 한국 유학을 하려던 것이다. 한 학기 등록금은 447만원이었다. 비자 발급을 위해선 등록금 납입 증명서가 필요해 정식 입학 전 등록금부터 냈다.

하지만 이 중 일부는 비자를 받지 못하거나, 개인 사정이 생겨 유학 시도가 좌절됐다. 이들은 학교에 미리 냈던 등록금 환불을 요청했고 학교 측도 환불을 약속했지만, 1년 넘도록 일부 학생들의 돈은 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하노이에서 유학원을 운영하며 이들의 유학 준비 과정을 대행한 흐엉 바오 안 원장은 “일부 학생이 독촉을 하는데, 학교는 묵묵부답이라 개인 돈으로 우선 환불 처리를 한 사례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서울 소재 B 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하려던 베트남 국적 지원자들은 비자 문제로 입학이 불발 됐음에도 지난해 1월 미리 납부한 등록금을 1년 반 넘게 환불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학교 뿐 아니라 한국이란 나라도 믿지 못하겠다"며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B 직업전문학교가 있는 건물의 모습. 이영근 기자

지난해 서울 소재 B 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하려던 베트남 국적 지원자들은 비자 문제로 입학이 불발 됐음에도 지난해 1월 미리 납부한 등록금을 1년 반 넘게 환불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학교 뿐 아니라 한국이란 나라도 믿지 못하겠다"며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B 직업전문학교가 있는 건물의 모습. 이영근 기자

정상적으로 비자를 발급 받아 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55명 중 24명이었다. 나머지 31명은 비자 탈락과 개인 사정 등으로 환불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 중 10여명은 지난 달 말까지도 등록금을 돌려 받지 못했다. 이 학교 등록금은 지난해 베트남 임금 노동자들의 월 평균 소득(35만원)을 고려했을 때, 1년 6개월치 소득을 꼬박 모아야 하는 수준이다.

해당 학교에서 고위직을 역임해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지방 사립대의 만성 재정 부실과 학교 재단 변경 문제 등 내부 사정이 겹쳐 이런 문제가 불거졌다”고 주장했다. A 예대 측은 본지 취재가 시작되자 “그동안 10명에 대한 환불 처리가 되지 않고 있던 건 사실”이라며 “오늘(1일) 내부 절차를 거쳐 모두에 대해 환불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어 “학교 내부 사정으로 환불이 늦어져 피해를 입은 분들께 매우 안타깝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비슷한 일들이 고용노동부 인가를 받은 직업전문학교 등 다른 교육기관에서도 속속 발생하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일본어 강사로 일하고 있는 다오 하이 윽(32)은 지난해 1월 베트남 현지 유학원을 통해 알게 된 서울 소재 B 직업전문학교에 한 학기 등록금 400만원을 납부했다. ‘K-뷰티’의 최전선인 서울에서 미용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등록금 마련을 위해 현지에서 대출까지 받았다.

다오 하이 윽(32)은 지난달 27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지난해 1월 B직업전문학교에 등록금을 냈지만 아직까지 환불 받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베트남에서 일하는 그의 월 소득은 43만원 정도고, 해당 학교 등록금은 약 400만원이다. 이영근 기자

다오 하이 윽(32)은 지난달 27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지난해 1월 B직업전문학교에 등록금을 냈지만 아직까지 환불 받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베트남에서 일하는 그의 월 소득은 43만원 정도고, 해당 학교 등록금은 약 400만원이다. 이영근 기자

그런데 봄이 다 지나도록 최종 입학이나 비자 발급 여부 등에 대해 확답을 받지 못했다. 고민 끝에 한국 유학을 포기한 그는 등록금 환불을 요청했고 이후 학교 측은 2차례 연락을 해와 환불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1년 7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한푼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달 27일 화상 인터뷰에서 “한달 소득이 한국 돈으로 계산하면 약 43만원 정도인데, 대출 이자만 한달에 16만원을 내고 있다”며 “학교 뿐 아니라 한국이란 나라를 믿지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B 학교는 국내외 학생을 대상으로 경찰ㆍ경호ㆍ사회복지ㆍ미용 분야 등의 직업 교육을 제공하는 사설 직업교육기관이다. 외국인들은 일정 조건을 충족한 이 같은 기관에 입학해 교육을 받을 목적으로 ‘우수사설기관 외국인연수(D-4-6)’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다. 교육생의 등록금 납입증명서 등 관련 서류를 연수 기관이 준비해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제출하면 비자 발급 여부가 결정된다. 이 학교 입학 서류에 따르면, 만약 비자가 나오지 않은 지원자가 환불을 신청할 시 학교 규정상 2개월 내에 돈을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다오와 같은 시기 B 학교에 입학하려다 출입국 서류 제출 지연 등의 문제로 포기한 베트남인 23명은 지금까지 등록금을 환불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학교는 3년 전에도 우즈베키스탄 국적 학생들의 등록금을 장기간 환불해 주지 않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부 학생들은 답답한 나머지 학교를 직접 찾아 항의하고 있다. 한국어가 능숙한 응우옌 티 투이(30)는 친척 동생이 등록금을 오래 환불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 2차례 한국을 찾았다. 그는 “첫 번째 만남에선 등록금을 돌려주겠다고 했는데 두 번째부턴 학교 측이 만나주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피해자들과 연계된 베트남 현지의 한 유학원 대표가 B 학교 관계자와 나눈 대화. 사진 유학원

지난해 12월 피해자들과 연계된 베트남 현지의 한 유학원 대표가 B 학교 관계자와 나눈 대화. 사진 유학원

다른 피해자들 다수도 해외에 머물고 있어 대응하기가 어렵고, 학교 측이 돈을 돌려 줄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민사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가 등록금 환불 명령 등 조처를 내리긴 어렵다. 대신 문제가 있는 기관에 대해 계도만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피해자들과 연계된 베트남 현지 유학원 관계자들은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B 학교에 총 9명을 유학 보낸 부이 반 보우 ATM 유학원 대표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여러 차례 학교를 직접 방문하고 항의했지만 소득이 없었고, 환불에 필요한 서류를 달라고 해 전달했지만 역시 감감 무소식이다. 학교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B 학교 관계자는 “환불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며 “우리 대응에 문제가 있다면 경찰에 신고하든, 법적 대응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