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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도시 청년들 사이에 부는 ‘남은 음식 뒤지기’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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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반 랜덤 박스. 사진 계면신문(界麵新聞)

잔반 랜덤 박스. 사진 계면신문(界麵新聞)

중국 대도시 밤거리에서 두리번거리는 젊은 세대를 보게 된다면 그들은 술집이 아니라 ‘남은 음식’을 찾아 헤매고 있을 수도 있다.

최근 중국 젊은 세대 사이에서 ‘잔반 랜덤 박스(剩菜盲盒)’의 인기가 심심치 않다. '잔반 랜덤 박스'란 자영업자들이 매장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랜덤으로 포장하여 온라인 앱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지칭한다. 이용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구매하고, 매장이 곧 문을 닫을 시간에 방문하여 음식을 수령한다.

'잔반 랜덤 박스'는 시스모파다이(惜食魔法袋), 미리허즈(米粒盒子) 등의 식당 마감 할인 앱에서 구매할 수 있다. 100위안(약 1만 8030원)대의 초밥도 30위안(약 5410원)에 구매할 수 있다.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이들이 열광하는 것이 놀랍지 않다.

잔반 랜덤 박스를 구매할 수 있는 마감 할인 앱 '시스모파다이'. 사진 텅쉰신문(騰訊新聞)

잔반 랜덤 박스를 구매할 수 있는 마감 할인 앱 '시스모파다이'. 사진 텅쉰신문(騰訊新聞)

‘소비 절약+환경 보호’ 두 마리 토끼 잡았다

‘잔반 랜덤 박스’는 특히 높은 물가에 시달리는 도시의 젊은 세대에게 좋은 대안으로 떠올랐다.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등 일선도시(一線城市·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을 포함한 중국의 대도시)는 물론 청두(成都), 충칭(重慶) 등 여러 도시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중국 SNS 샤오훙수에 '잔반 랜덤 박스'를 검색하면 수많은 게시물을 볼 수 있다 .사진 샤오훙수(小紅書)

중국 SNS 샤오훙수에 '잔반 랜덤 박스'를 검색하면 수많은 게시물을 볼 수 있다 .사진 샤오훙수(小紅書)

중국 소셜미디어 플랫폼 샤오훙수(小紅書)에 '잔반 랜덤 박스'를 검색하면 수천 개의 검색 결과가 나온다.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抖音·TikTok)에는 ‘잔반 랜덤 박스’로 하루 세 끼를 해결하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무지출 챌린지(하루 지출을 0원에 가깝게 만들고 SNS에 인증하기)’처럼 ‘잔반 랜덤박스’가 중국의 ‘돈 없는 젊은 세대에게 적합한 절약 꿀팁’으로 자주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잔반 랜덤 박스’는 신선함을 무기로 샤오훙수, 비리비리(嗶哩嗶哩), 틱톡 등 중국 SNS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 남성은 중국 언론 매체 신커두(鋅刻度)와의 인터뷰에서 "남은 음식이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이 안 좋을 수도 있지만, 잔반 랜덤 박스는 남들이 먹고 남은 것이 아니라 그날 구운 빵인데 다 안 팔렸을 뿐"이라고 강조하며 자신은 마감 할인 앱을 통해 유명 제빵 프랜차이즈 위드위트(原麥山丘·WithWheat)의 80위안(약 1만 4385원)짜리 빵을 27위안(약 4855 원)에 사곤 한다고 밝혔다.

그는 “환경에 관심이 많은 한 사람으로서 식당에서 그날 팔리지 않는 음식을 폐기한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라며 “그래서 중국에 '잔반 랜덤 박스'가 등장하자마자 열혈 이용자가 됐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잔반 랜덤 박스’는 합리적인 소비는 물론, 음식물 쓰레기 감소 효과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잔반 랜덤 박스’의 원조는 덴마크?

사진 소후(搜狐)

사진 소후(搜狐)

'잔반 랜덤 박스'의 원조는 ‘Too Good To Go’다. 2015년 덴마크에서 시작되어 유럽 지역을 주요 사업 범위로 삼은 식당 마감 할인 플랫폼이다. 3~4유로(약 4247원~ 5662원)의 저렴한 가격에 디저트와 음식을 많이 구매할 수 있어서 빠르게 대중화됐다. 스타벅스 등 유명 브랜드도 입점해있다. Too Good To Go는 유럽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미국, 호주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 17개국에서 활약하고 있다.

중국의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도시 물가까지 무섭게 치솟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중국에 Too Good To Go를 벤치마킹한 여러 플랫폼이 등장했고, 단숨에 중국 젊은 세대를 사로잡았다. 최근에는 심지어 한정된 수량의 '잔반 랜덤 박스'를 '쟁취'하기 위해 '오픈런'에 나선 젊은 세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다.

리뷰도 입점 매장 수도 아직은 ‘부족’

짧은 기간에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마감 할인 플랫폼. 중국에서는 이제 막 시작한 사업인 만큼 부족한 부분이 많다.

첫 번째로 리뷰가 적다. 이는 곧 이용자들이 쉽게 좋은 매장을 고를 방법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Too Good To Go의 이용자들에게는 5점 만점의 평점이 평가 지표가 된다. 많은 이용자가 4.5점을 ‘괜찮은 식당’의 기준으로 삼고 구매를 결정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국 마감 할인 플랫폼은 누적된 리뷰 수가 적어 이용자가 도전정신을 발휘해 직접 체험해 봐야 좋은 매장인지 알 수 있다.

또한, 마감 할인 시스템이 성숙하지 않아 랜덤 박스 품질의 편차가 크다. 한 네티즌은 샤오훙수에 “어떤 가게는 랜덤 박스에 서너 개의 빵이 들어있을 정도로 가성비가 좋지만, 어떤 가게는 저렴한 금액마저 아까울 정도로 대충 담는다"라는 글을 남기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랜덤 박스로서의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한 이용자는 “한 가게에서 랜덤 박스를 두 번 샀는데, 두 번 다 같은 구성이었다”라며 “식상하다”라고 평했다. 이외에도 “첫 방문 때 랜덤 박스 구성이 괜찮아서 다시 방문했더니 빵 한 개만 주더라”라며 “내가 물어봤더니 마지못해 하나 더 줬다”라고 밝힌 이용자도 있었다.

랜덤 박스의 품질을 일정하게 보장하기 어렵다는 점 외에도 플랫폼에 입점 업체가 적다는 것 역시 큰 문제다. 이는 많은 이용자가 단기간에 플랫폼에서 탈퇴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 네티즌은 샤오훙수에 청두에서 잔반 랜덤 박스 플랫폼 ‘미리허즈’를 사용한 후기를 올렸다. 그는 "반경 1km 이내에 잔반 랜덤 박스를 파는 가게는 한두 곳 정도가 전부고, 이마저도 수령 시간이 다른 경우가 많아 동시에 여러 개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시장 구조적인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중국 음식점들은 자체적인 잔반 처리 규정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일괄 폐기하거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식이다. 잔반 랜덤 박스는 오프라인 마감 세일보다 할인율이 훨씬 높고, 플랫폼 이용 수수료까지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 아직 플랫폼 이용자가 많지 않은 상황이라 자발적으로 입점하려는 업체가 많지 않다.

잔반 랜덤 박스, 중국에서의 전망은?

 사진 소후(搜狐)

사진 소후(搜狐)

현재 중국의 젊은 세대는 '잔반 랜덤 박스'라는 새로운 문화에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잔반 랜덤 박스'는 이제 막 시작한 사업인 만큼 이용자의 선택 범위가 한정적이고, 새로운 시스템에 완벽하게 적응한 판매자들 역시 적다. ‘잔반 랜덤 박스’의 신선함이 사라져도 지속적인 사용을 이끌려면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러나 ‘잔반 랜덤 박스’가 환경친화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새로운 소비 형태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잔반 랜덤 박스’는 소비자의 비용을 절감하고 상인들의 피해를 줄이는 일석이조의 사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앞으로 중국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박고운 차이나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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