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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화 아닌 사업 중단” 불끄는 여당…야당 “백지화 취소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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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호 02면

서울 - 양평고속도 공방 2라운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 백지화와 관련해 사업 재개 가능성을 내비쳤다. [뉴스1]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 백지화와 관련해 사업 재개 가능성을 내비쳤다. [뉴스1]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 사업의 노선 변경안에 포함된 강하IC가 정치권의 새로운 공방 요소로 떠올랐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7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서울-양평 고속도로 대안 노선은 당초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요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 장관은 “2021년 5월 당시 민주당 소속 양평군수와 민주당 지역위원장이 당정 협의를 열고 예타안에 반대하면서 강하IC를 설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며 “그때 민주당이 제시한 안이나 지금 국토부가 복수안으로 제시한 검토안이나 같다”고 말했다. 양평군 강상면을 종점으로 하는 국토부의 변경 노선은 강하IC 신설을 포함하는 만큼 민주당 요구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다.

최인호 민주당 의원이 7일 기자회견에서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취소와 원희룡 국토부 장관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최인호 민주당 의원이 7일 기자회견에서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취소와 원희룡 국토부 장관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원 장관은 “달라진 건 자기네 군수가 떨어지고 야당이 된 것뿐”이라며 “검토해 달라고 복수안으로 올린 것 중 하나를 가지고 김건희 여사를 위한 특혜라고 주장하는 건 내로남불이자 거짓말 선동 프레임”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 5월 국토부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고속도로 종점이 양평군 양서면에서 강상면으로 바뀌자 김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강상면 일대에 토지를 소유한 김 여사 일가에 특혜를 주기 위해 고속도로 노선을 변경했다는 주장이다. 원 장관은 전날 긴급 당정 협의 후 “민주당의 가짜뉴스 프레임을 말릴 방법이 없다”며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 사업의 전면 백지화를 선언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강하IC를 설치하더라도 강상면을 종점으로 요구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지역 언론 등에 따르면 2021년 4월 양서면을 종점으로 한 고속도로 신설안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자 한 달 뒤인 최재관 민주당 여주·양평 지역위원장이 정동균 당시 양평군수와 당정 협의를 했고, 이 자리에서 최 위원장은 강하IC 설치를 포함한 12개 읍·면 지역 주민과 간담회 내용을 전달했다.

이와 관련, 최 위원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국토부가 제안한 왕창리 일대 강하IC를 주장한 게 아니라 광주시 남종면과 경계인 강하면 운심리 쪽에 IC를 내달라고 했던 것”이라며 “그때 당시에도 종점 변경을 얘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민주당은 사업 백지화 취소도 촉구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진상 규명 태스크포스(TF)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야당의 의혹 제기에 해명은 고사하고 백지화 운운하며 국민을 협박하는 건 독재적 발상이자 직권남용”이라며 “원 장관은 양평군민과 국민께 사과하고 백지화를 철회한 뒤 사업을 원안대로 처리하라”고 요구했다.

국회 국토위 소속 한준호 의원은 “저는 장관직을 걸 뿐 아니라 정치 생명을 걸겠다”는 원 장관의 발언도 문제 삼았다. 한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양평 소재 김 여사 일가 땅에 대한 질의에 원 장관이 “확인해 보겠다”고 답한 사실을 공개하며 “(원 장관이) 사전에 (김 여사 일가의 양평 땅을) 인지하지 못했는지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원 장관은 페이스북 글에서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있었던 토지 형질 변경 논의와 대안 노선과는 연결 고리가 전혀 없었다”며 “참 집요하고 악질적”이라고 반박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민주당 논리대로라면 2년 전 민주당이, 나아가 양평군민들이 김 여사 일가에 특혜를 주려 한 셈이냐”며 “오로지 정쟁에만 매몰돼 세상 모든 일에 색안경을 끼고 달려드니 이런 낯부끄러운 자가당착이 생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런 가운데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 사업 백지화와 관련해 사업 재개 가능성을 내비쳤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원 장관이 말은 ‘백지화’라고 했지만 ‘중단’이라고 본다”며 “민주당의 문제 제기에 현실적으로 사업 추진이 어려운 상황에서 민주당이 건설적 대안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규 사무총장도 “민주당의 괴담과 선동으로 벌어진 일이니 민주당이 괴담 책임자를 문책하고 사과한다면 사업 재개를 원하는 양평군민과 국민의 뜻을 정부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사과를 전제로 국토부에 사업 재개를 설득해 보겠다는 얘기다. 이 총장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은 경기 동부권 교통 편의 제고와 지역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도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민주당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했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의 아니면 말고식 의혹 제기로 최대 피해는 양평 주민이 보게 됐다”며 “고속도로 건설 사업 중단의 책임은 오롯이 민주당이 져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 지도부가 백지화 사태를 봉합하려는 제스처를 취하는 데는 내년 총선과도 연관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총선 때 경기 지역 58석 중 7석을 제외하고 민주당이 싹쓸이한 가운데 여주·양평은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의 15년 숙원 사업이 무산될 경우 양평은 물론 경기 북부권에도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페이스북 글에서 “양평은 가만히 있어도 후보만 이상하게 안 내면 보수 정당을 찍어주는 곳”이라며 “여럿이 모여 짠 작전의 수준이 저거라면 저 사람들은 나중에 선거를 지휘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도 “사업이 추진 중인 곳은 상습 정체 구간인데 양평 고속도로가 생기면 인근 지역 모두 혜택을 보게 된다”며 “그러잖아도 수도권 선거가 어려운데 이번 사태를 결코 가볍게 보면 안 된다”고 우려했다. 여주·양평에서 5선을 지낸 정병국 전 의원도 “(사업이 무산되면) 양평군민뿐 아니라 하남 신도시 주민들도 피해를 본다”며 “이 도로가 없으면 자칫 하남에 들어서는 신도시 형성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 처가와 관련해 민주당이 특혜·비리라고 얘기하는 마당에 대통령실에서 입장을 내는 게 적절하지 않다”며 “고속도로는 대통령실이 재가하거나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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