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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윤수일 '환상의 섬' 흉물 됐다...죽도의 몰락, 무슨 일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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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장생포에 있는 죽도. 김윤호 기자

울산 장생포에 있는 죽도. 김윤호 기자

'내 고향 바닷가 외딴 섬 하나. 뽀얀 물안개 투명한 바닷속 바위에 앉아서 기타를 튕기면 인어 같은 소녀가. 내 곁에 다가왔지.'

가수 윤수일이 1985년 발표한 '환상의 섬' 노래 일부다. 1977년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데뷔해 국민가수로 불린 윤수일은 울산 장생포 출신이다. 그가 부른 '환상의 섬'은 울산시 남구 매암동 장생포에 있는 죽도를 그린 노래다. 윤수일은 대나무·진달래·동백꽃 등이 어우러져 신비로움을 더했던 고향의 섬을 기억하며 열창했다.

하지만 죽도는 이제 환상의 섬이 아니다. 녹슨 철조망과 잡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텅 빈 건물 등만 남은 폐허로 변한 지 오래다.

지난 13일 장생포항 한쪽 소방도로로 돌아서 들어가자 작은 돌계단 위로 녹슨 펜스와 철조망이 눈에 띄었다. 4000㎡ 크기 죽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출입구인 철문이 있는 곳이다. 잡풀 더미를 지나 계단으로 올라가 철문으로 다가가자, 녹슨 쇠사슬이 철문에 감겨 있었다. 커다란 자물쇠도 채워져 있었다.

철문 틈 사이로 죽도 안을 들여다보니 잡풀이 곳곳에 가득했다. 풀숲 안쪽엔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건물이 보였다. 유리창이 거의 다 뜯겨 나가고, 간판이 없는 3층 규모(270여㎡) 건물이었다. 오래전부터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듯 낡아서 음산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환상의 섬 죽도는 이렇게 흉물스럽게 바뀌었다.

울산 장생포에 있는 죽도의 모습. 김윤호 기자

울산 장생포에 있는 죽도의 모습. 김윤호 기자

죽도의 몰락은 섬 기능을 잃어버리면서 예견됐다. 1990년대 초까지 죽도는 울산항 주변 바다에 있었다. 1995년 해안 매립으로 육지가 됐고, 이후 야산이 됐다. 죽도엔 해상교통관제센터 건물이 들어서 공익적인 기능만 했다. 그러다 2013년 해상교통관제센터가 인근에 새로 건물을 지어 옮겨갔고, 그 이후 사람 발길이 뚝 끊겼다.

죽도 소유는 울산시교육청이지만, 관할 지자체는 울산 남구다. 남구가 죽도를 장생포항에 있는 고래마을과 연계한 관광 콘텐트로 개발하려고 해도 소유주 허락을 받아야 한다. 무상임대 받거나, 죽도 자체를 매입해야 가능하다.

울산 장생포에 있는 죽도의 모습. 사진 울산 남구

울산 장생포에 있는 죽도의 모습. 사진 울산 남구

남구는 죽도 운영관리를 조건으로 무상임대 후 관광 콘텐트를 개발해 운영하려 하고, 부지 소유주인 울산시교육청은 죽도를 남구가 유상매입하기를 바라고 있다. 양측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죽도는 방치되고 있다.

울산 장생포에 있는 죽도 안에 있는 건물. 김윤호 기자

울산 장생포에 있는 죽도 안에 있는 건물. 김윤호 기자

이에 대해 남구는 "죽도 매입비는 20억원 정도인데, 그만큼 돈을 들여 사들인다면 현재 방치 상태인 건물을 정리하는 등 콘텐트 개발에 또 다른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죽도 자체가) 항만시설보호지구여서 활용도가 떨어지는 점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죽도 입구에 붙어 있는 표지판. 죽도에 대한 설명이 쓰여져 있다. 김윤호 기자

죽도 입구에 붙어 있는 표지판. 죽도에 대한 설명이 쓰여져 있다. 김윤호 기자

울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울산 남구가 죽도를 매입하기 위해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갑자기 최근 들어 계획 자체가 바뀐 것 같아 일단 무슨 상황인지 지켜보고 있다는 정도만 (죽도에 대해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울산 시민은 양 기관이 합의해 아름다운 죽도 모습을 되찾기를 바라고 있다. 나아가 윤수일이 부른 환상의 섬으로 거듭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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