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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IPO 그림자 개입? 깐깐한 심사에 기업들 속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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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액셀레이터 1호 상장 도전으로 주목받았던 블루포인트파트너스가 한국거래소 상장 예비 심사를 받고도 상장 절차를 중단했다. 금융감독원의 증권거래신고서 심사 과정에서 3차례 정정을 요구받고서 내린 결정이다. 시장에서는 “심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상장 때를 놓친 데다, 3차례 정정 요구는 사실상 상장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라고 주관사와 회사가 판단한 것 같다”는 해석이 나왔다.

금감원이 증권신고서 심사 과정에서 수차례 정정 요구를 하면서 기업공개(IPO) 일정이 지연되거나 공모가를 내리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상장한 26개 기업은 모두 공모 과정에서 증권신고서를 수정했다.

증권신고서를 여러 번 뜯어고친 기업도 한둘이 아니다. 에스바이오메딕스와 나라셀라는 4번, 프로테옴텍과 진영은 3번, 마녀공장은 2번씩 증권신고서를 정정했다. 나라셀라와 프로테옴텍은 공모가 정정과정에서 희망 범위를 낮췄고, 다른 기업은 공모 일정을 늦췄다.

최근 증권신고서 정정은 대부분 투자자 보호 명목의 ‘자진 정정’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금감원 심사 과정에서 정정한 만큼, 사실상 (금감원의) 정정 요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감원의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가 ‘그림자 개입’이란 불만도 나온다. 상장 적정성 여부나 공모가 결정은 금감원이 관여할 사항이 아님에도 ‘정정신고서’라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개입하거나 시장에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IPO의 주요 관문은 상장 승인 심사와 증권신고서 심사 두 가지다. 과거에는 이 두 업무를 모두 금감원이 담당했다. 현재는 한국거래소와 금감원이 나눠서 맡는다. 한국거래소는 기업이 상장 적격성을 갖췄는지를 심사하고, 금감원에서는 승인 이후 제출한 증권신고서를 심사한다. 이때 금감원은 ▶형식을 제대로 갖췄는지 ▶중요사항에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가 있는지 ▶투자의 합리적인 판단을 저해하거나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 등을 심사할 수 있다.

공모 가격은 금감원과 한국거래소가 개입할 영역이 아니다. 금융투자협회 ‘인수업무규정’에 따르면 공모 가격은 상장하려는 회사와 발행사, 주관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시장 자율에 맡기고 있다.

원칙적으로 ‘공모 가격’이나 ‘상장 적정성’ 여부는 금감원이 관여할 영역이 아닌 셈이다. 한 증권사의 IPO 담당자는 “금감원이 개입한 사례 중 시장에서 의아하게 여겨졌던 비교대상기업(피어그룹)을 정정하라고 한 것은 적절했다”며 “다만 수차례에 걸친 정정 요구나 거래소 예비 심사과정을 거쳤음에도 추가로 부수적 사항에 대해 기간 연장을 요구받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정정요구가 많아지며 상장 예비 기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먼저 ‘기간 리스크’다. 예정된 기간 내에 IPO를 진행하지 못해 자금 조달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시장 상황이 급변해 적정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다. 또 정정 요구 자체가 시장에 부정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금감원 측은 “여러 차례 정정 요구와 심사 기간이 길어지는 것과 관련한 불만에 대해서는 ‘한 번에 제대로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당국의 어려움도 있다”며 “공모가 개입 의도는 결단코 없고, 시장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부분과 관련해 시각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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