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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라면 가격 인하’ 압박하지만…업계 “검토 중”인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5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의 모습. 뉴시스

지난 5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의 모습. 뉴시스

대표적인 서민 음식으로 꼽히는 라면값이 ‘뜨거운 감자’가 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제 밀 가격 하락을 이유로 가격 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하면서다. 라면 업계는 “다각도로 검토해 보겠다”고 했지만 난색을 보이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라면 업체들은 현재 가격 인하를 ‘검토 중’이다. 농심은 “어려움은 있으나 다각도로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삼양식품도 “당장 가격 인하 계획은 없지만, 국민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오뚜기도 마찬가지다. “인하 결정이나 논의된 것은 없지만, 다각도로 검토 예정”이라고 알려왔다.

라면 업계는 지난해 제품 가격을 일제히 10% 안팎으로 올렸다. 업계 1위 농심이 지난해 9월 주요 제품의 출고 가격을 평균 11.3% 올린 데 이어, 10월 들어 오뚜기가 주요 제품 가격을 평균 11.0% 올렸다. 삼양식품도 같은 달 13개 제품 가격을 평균 9.7% 인상했다. 당시 업계는 “밀가루·팜유 등 주요 수입 원자재뿐 아니라 물류비, 시설비 등 생산 비용 급증으로 원가 부담이 가중됐다”고 인상 이유를 밝혔다.

추경호 부총리는 전날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난해 (라면값이) 많이 인상됐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에 비해 50% 안팎 내렸다”며 “기업들이 밀 가격 하락에 맞춰 (가격을)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의 말대로 최근 국제 밀 가격은 내림세다. 이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 정보에 따르면, 밀가루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이는 국제 소맥(SRW)의 6월 가격은 t당 231달러 수준이다. 가장 높게 치솟았던 지난해 5월 419달러 대비해 45%가량 떨어졌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다만 라면 업계는 국제 밀 가격 하락이 라면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원한 한 업계 관계자는 “국제 밀 가격이 하락했다고 하지만, 라면 업체들은 밀이 아니라 대형 제분회사에서 밀가루를 사다 쓰기 때문에 밀 가격 하락이 곧바로 반영되는 구조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밀과 팜유 등은 가격이 안정세라고 해도, 전분·설탕 등 다른 원부자잿값은 여전히 오름세”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밀가루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10% 오른 상황이다. 여기에 물류비, 인건비 등 원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이런 가운데 라면 업계가 제품 가격 인상 후, 올해 1분기 실적이 크게 좋아진 것도 가격 인하 압박 요인으로 꼽힌다. 농심의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해 각각 16.9%, 85.8% 증가했다. 오뚜기 역시 같은 기간 매출은 15.4%, 영업이익은 10.7% 늘었다. 다만 삼양식품의 1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21.5%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2.6% 감소했다. 이에 대해서 라면 업계는 “해외 시장 성장에 따른 실적 증가로, 가격 인상이 큰 요인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라면 관련주들이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라면 가격 인하에 따른 실적 악화 우려에 투자자들이 매도세를 이어가고 있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농심은 기준 전일 대비해 6.05% 내린 41만15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삼양식품과 오뚜기도 각각 7.79%, 2.94%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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