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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는데 빚 1100만원"…베트남 청년, 불법체류 '검은 유혹' [이제는 이민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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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체류 연장이 가능했다면 불법 체류 절대 안 했죠.”

지난달 19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딘 만 틱(39)은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베트남 현지 취재를 위해 취재진이 고용한 ‘통역사’보다도 한국어 실력이 뛰어난 그였다. 딘은 통역 없이 취재진에게 직접 7년간의 한국살이를 털어놨다. 지난 2007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그는 이후 안산, 군포, 인천, 마산의 제조업체를 떠돌며 2013년까지 일했다. 마지막 1년은 불법 체류자 신분이었다.

2007년부터 7년 간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한 딘 만 틱(39). 하노이에서 살고 있는 그는 자신의 이주 경험을 지난달 19일 유창한 한국어로 전했다. 하노이=이영근 기자

2007년부터 7년 간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한 딘 만 틱(39). 하노이에서 살고 있는 그는 자신의 이주 경험을 지난달 19일 유창한 한국어로 전했다. 하노이=이영근 기자

법무부가 시행한 ‘불법체류 외국인 자진 출국제도’를 통해 베트남으로 귀국한 딘 만 틱이 들려준 이야기에는 인력 송출국 노동자의 ‘가장 보통’의 이주 경로가 녹아있었다. ‘불법 사람’(불법체류자)이 되라는 유혹에 베트남 청년이 빠지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딘은 베트남 홍강 삼각주에 위치한 타이빈 성(城)의 흥하(Hưng Hà)현에서 태어났다. 4남매 중 막내로 유일한 아들이었다. 그의 부모는 농사를 지었다. 딘은 “어릴 때를 떠올리면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진 초록색 논만 떠오른다”고 말했다. 베트남의 비옥한 토지에 온 가족이 쌀·옥수수·고구마를 심고, 닭도 길렀으나 6인 가족에게 허락된 부는 ‘자급자족’ 수준이었다. 부모님의 한 달 수입은 최대 300만동(약 16만원) 남짓에 불과했다.

베트남 농촌 청년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최고의 경로는 단연 ‘해외 취업’이었다. 주변 친구들은 글자를 깨우치기 전부터 해외로 떠날 꿈을 품었다. 딘도 마찬가지였다. 2001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고향을 떠나 호치민으로 떠났다. 도시로 가야 해외 취업의 기회가 더 많아서다. 전문 대학에서 3년간 공부하고 하노이의 한 공장 취업한 지 2년, 그는 이제 베트남을 떠나 ‘코리아 드림’을 이뤄야겠단 목표가 좀 더 분명해졌다고 한다.

돈이 필요해 해외로 떠나려던 딘에게 필요한 건 다시 ‘돈’이었다. 한국에 가려면 한국어 학원비, 건강검진비, 항공권, 한국에서 월급을 받기 전 생활비 등을 비롯해 7000만~1억동(약 390만~550만원)이 필요했다. 한국의 저숙련 취업이민 통로인 고용허가제(EPS)를 이용할 경우 저 정도지 유학생의 경우 2억 동(약 1100만원)이 넘는 돈이 있어야 했다.

딘 만 틱(39)의 고향 타이빈 농촌의 2023년 현재 모습. 한 농부가 베트남 전통모자인 농라(Non La)를 쓰고 모내기를 하고 있다. 딘 만 틱 제공

딘 만 틱(39)의 고향 타이빈 농촌의 2023년 현재 모습. 한 농부가 베트남 전통모자인 농라(Non La)를 쓰고 모내기를 하고 있다. 딘 만 틱 제공

한 달 임금이 150만동(약 8만원) 수준이었던 그로서는 큰돈이었다. 결국 누나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빌려줬다. 장남의 성공을 위해 온 가족이 희생하는 베트남 문화는 과거 한국의 모습과 닮았다. 딘은 “사실 나는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 지금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가려면 1억7000만(940만원)~2억동(1100만원)이 필요하다”며 “'귀국 보증금' 명목으로만 1억동(약 550만원)을 통장에 넣어둬야 하는데 이 돈을 마련하고자 대부분 빚을 진다”고 말했다.

2013년 베트남 정부는 불법체류 방지 대책의 하나로 고용허가제로 파견되는 노동자에게 귀국보증금 예치제를 시작했다. 사실상 한국 정부 압박에 따라 마련한 제도다. 한국 정부가 직전 해 ‘베트남 출신 불법체류자가 많다’며 추가 입국을 중단하자 베트남에서 자구책으로 도입했다. 이에 따르면 베트남 노동자는 예치금 1억동을 한국에 가기 전 맡기고, 귀국 시 환불받을 수 있다. 대신 불법 체류가 확인되면 보증금 전액이 베트남 국고로 환수된다.

담보 제공에 따른 부담이 너무 크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베트남 정부는 이달부터 제도를 일부 개선했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오는 이주자들이 담보 없이 사회정책은행에서 귀국 보증금을 신용대출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신용대출 역시 엄연히 빚이다.

딘은 한국에 오기 전부터 생긴 빚이 불법 체류를 부추긴다고 했다. 그는 “큰 빚을 지고 한국에 오면 정말로 초조해진다”며“땅 팔거나 대출받은 뒤 나만 바라보는 가족이 눈에 밟히는데, 그때 브로커가 접근해 ‘불법 체류하면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다’고 유혹하면 쉽게 넘어간다”고 했다.

베트남 통계총국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 농촌 지역의 평균 소득은 690만동(약 38만원)이다. 1억동을 예치하기 위해서는 약 3년 치 소득을 고스란히 쏟아부어야 한다. 감당 여력이 있는 가구가 많을 리 없다. 딘은 “대부분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땅을 팔아 비용을 마련한다”며 “부동산 소유를 증명하는 ‘핑크북(Pink Book)’을 은행에 맡기면 땅값의 70% 정도 대출을 해준다”고 말했다. 담보로 맡길 부동산조차 없는 이들은 지역 유지에게 사채를 빌렸다. 일반적으로 이율은 연 30%를 넘긴다고 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하지만 이 제도는 실효성이 낮다. 베트남 노동보훈사회부에 따르면 2020년 불법체류를 택한 베트남 이주노동자 1750명 중 1476명이 보증금 환수 대상이었다. 보증금을 포기한 채 불법체류를 선택했다는 의미다. 딘은 “1억동은 한국에 오기 전에는 부담스러운 돈이나, 일단 한국에 오면 2~3달 만에 벌 수 있는 돈”이라며 “그렇다 보니 일단 한국에 와서 불법 체류로라도 일하면 된다는 인식이 악순환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 제도가 오히려 불법체류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유사 제도를 시행했던 법무부는 제도를 폐지했다. 지난해 1월부터 시행했다가 올해 폐지한 ‘계절근로자 활성화 방안’이 그것이다. 법무부를 통해 계절 근로자로 들어오는 이주자는 보증금이 없어졌지만,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노동자는 보증금을 내야 하는 ‘한 나라 두 정책’이 존재하게 된 셈이다. 이민 관련 콘트롤타워가 없는 ‘중구난방’식 한국 이민 정책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푼 꿈을 안고 한국 땅을 밟은 딘을 기다리고 있는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첫 직장이었던 안산 시화공단의 제조업체가 금융위기 여파로 도산했다. 특근과 잔업이 사라진 공장의 월급은 저축은커녕 생활비를 대기에도 빠듯했다. 군포와 인천 남동공단을 3년간 떠도는 신세가 됐다. 그러는 사이 4년 10개월의 체류 기간이 다했다. 사업장을 변경한 이력이 있는 딘은 체류 기간 연장 대상이 아니었다. 딘은 “불법 체류자가 되기 싫었으나 기간 연장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했다”며 “고용 연장 제도가 좀 더 유연했다면 당연히 합법으로 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부터 7년 간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한 딘 만 틱(39). 그는 큰 빚을 지고 한국으로 향하는 베트남의 현실을 유창한 한국어로 전했다. 하노이=이영근 기자

2007년부터 7년 간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한 딘 만 틱(39). 그는 큰 빚을 지고 한국으로 향하는 베트남의 현실을 유창한 한국어로 전했다. 하노이=이영근 기자

경남 마산에서 불법 체류자로 1년간 숨죽인 채 살던 딘에게 비보가 날아든 건 2012년이었다. 누나들은 부모님의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고 했다. 유일한 아들로서 딘은 부모님을 돌보러 가야 했다. 고단했던 한국살이에 마침표를 찍기 전 덜컥 겁이 났다. 베트남을 떠난 지 7년. 그곳에 자신의 자리가 있을지 두려웠다.

딘은 “외국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귀환해 적응에 애를 먹는 노동자가 많다”며 “한국에서 일하다가 산업 재해를 당하거나 건강이 악화한 채로 베트남으로 돌아간 경우 일자리 자체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아둔 목돈을 잘못된 곳에 투자하거나 사기를 당해 신세를 망치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7년간 쉼 없이 일한 그에겐 7억동(약 3900만원)의 돈이 남았다. 다만 그는 ‘해외 성공신화’를 꿈꾸는 자신의 후배들에게 “돈만 보고 해외에서 일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한국에서 그가 건진 진짜 자산은 ‘유창한 한국어’였다.

딘은 공장 일을 마친 뒤 구로역 인근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하루 2시간씩 한국어를 무료로 배웠다고 했다. 당시 이미 일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딘은 한국어를 더 배울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한국어를 잘 배워야 한국 문화와 한국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재 하노이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딘의 고객은 99%가 한국인이다.

한건수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한국이민학회장)는 “딘 만 틱의 사례는 송출국 이주민이 밟는 이주·귀환 경로의 전형”이라며 “한국과 송출국 정부가 각자 합리성을 갖고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이주민이 겪는 문제를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옭아매고 있다”고 말했다.

최서리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관광객으로 입국 후 불법 취업한 경우와 제도적 한계로 근무지를 이탈한 경우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며 “사례마다 개별 판단하는 심판원을 만들어 ‘체류기간 초과자’가 심사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서석용 한국이민사회전문가협회 하노이 지부장은 “이민자가 늘며 생길 수 있는 불법 체류 등 부작용을 줄이려면 도입 단계에서 큰 빚을 지지 않고, 체류를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한국과 베트남이 서로 입장에서 함께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하면 윈윈(win-win)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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