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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 확신, 승부차기 준비 안 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지난 16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인터뷰하는 김은중 U20 축구국가대표 감독. 그는 “우리 선수들에겐 ‘이제부터가 진짜 도전’이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지난 16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인터뷰하는 김은중 U20 축구국가대표 감독. 그는 “우리 선수들에겐 ‘이제부터가 진짜 도전’이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중요한 대회를 마친 감독님마다 ‘만사 제쳐 놓고 푹 쉬고 싶다’고 말씀하실 때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습니다. 막상 같은 입장이 되어보니 그게 진심이었네요.”

지난 16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본사에서 만난 김은중(44)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감독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월드컵에서 4강에 오르기까지 매 경기 선보인 그 표정 그대로였다.

대회 기간 김 감독은 ‘포커 페이스’로 유명세를 탔다. 골을 넣거나 실점을 해도, 석연찮은 판정으로 불이익을 당해도, 심지어 거친 파울에 선수들이 고통을 호소할 때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김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어리다. 경기 중 감독이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면 선수들도 이내 똑같은 심리 상태에 놓인다”면서 “그 점을 염려해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쓴 것”이라고 말했다.

딱 한 번 울컥한 순간이 있었다. 김 감독은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에서 승리해 4강행을 확정 지은 직후 인터뷰를 진행하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 잠시 눈물을 글썽였다. 당시 심정을 묻자 멋쩍어하던 그는 “이 선수들은 뛰어난 잠재력을 갖추고도 ‘골짜기 세대’(이전 세대에 끼어 존재감이 없는 세대)라는 평가 속에 주목받지 못했다”면서 “보란 듯이 이번 대회 목표(8강 이상)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면서 힘들게 준비한 기억들이 떠올라 가슴이 벅차올랐던 것”이라 털어놓았다.

한국은 대회 기간 중 승부차기 연습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결선 토너먼트(16강)에 오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은 “운이 따라야 하는 승부차기 대신 90분 또는 120분 안에 준비한 걸 모두 쏟아내 원하는 결과를 만들자는 무언의 주문이었다. 선수들이 내 뜻을 이해하고 잘 따라준 덕분에 단 한 번의 승부차기도 없이 대회를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MZ세대’ 제자들에 대해 김 감독은 “지도자가 시키면 무조건 따른 우리 세대와 달리 ‘당위성’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이 신선했다”며 “이 선수들은 이 훈련을 왜 하는지, 실전에서 어떻게 활용할 건지 자세한 설명을 들은 이후에야 움직였다”고 말했다.

제자들의 특징을 파악한 그는 ‘수평적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었다. 경기 당일 정장 대신 트레이닝복을 고집한 것 또한 같은 이유다. 김 감독은 “선수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대회를 치르고자 했다”면서 “축구화만 신지 않았을 뿐, 매 경기 트레이닝복 속에 선수들과 함께 부대끼며 땀을 흘린 훈련복을 챙겨 입었다. 마음으로나마 함께 뛴다는 각오였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 김은중’과 가장 닮은 선수를 꼽아 달라는 질문에 고심하던 그는 스트라이커 이영준(김천)을 언급했다. “최종 엔트리 발탁 직전 성진영(고려대), 대회 초반 박승호(인천) 등 팀 내 스트라이커 자원이 줄줄이 부상으로 낙마했다”고 설명한 김 감독은 “이영준이 사실상의 유일한 최전방 공격수로 혹사에 가까운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현역 시절의 나처럼 묵묵히 버텨줬다”고 칭찬했다.

김 감독은 “FIFA 주관 국제대회에서 4강에 오른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공이지만, 여기서 만족하면 다음에 남은 건 내리막길뿐”이라면서 “우리 선수들에겐 ‘이제부터가 진짜 도전’이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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