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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같은 정책, 미국에서나" 성전환 수술 금지한 이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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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의회가 14일(현지시간) 성전환 수술을 금지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가치를 버려야 한다고 요구한 뒤 러시아 내 성소수자(LGBT,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강화되는 가운데 이뤄졌다.

성소수자 운동가들이 지난 2013년 7월 14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성적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반(反)동성애에 반대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AP=연합뉴스

성소수자 운동가들이 지난 2013년 7월 14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성적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반(反)동성애에 반대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AP=연합뉴스

로이터·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 국가두마(하원)는 개인의 성전환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의학적 개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심의한 뒤 이를 승인했다. 이날 심의(독회)에는 전체 의원 450명 중 365명이 참석했다. 다만 어린이의 선천성 생리 이상 치료와 관련된 경우에 한해선 의료적 개입을 허용한다는 예외 조항을 뒀다.

법안은 이후 하원 추가 심의와 표결을 거쳐 러시아 상원인 연방평의회의 표결을 거친 뒤 푸틴 대통령이 서명하면 발효된다.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을 비롯해 주요 정당 의원 400여 명이 지지 의사를 밝힌 상태라, 해당 법안이 발효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통합러시아당 소속의 표트르 톨스토이 하원의원은 “서구발 가정 파탄 이데올로기 침투를 막기 위한 장벽을 세웠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조국의 명예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서방 영향력에서 벗어나 단결된 전선을 구축한 새로운 주권 국가인 러시아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길 바란다”고 전했다.

러시아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따라야 한다는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정교회의 강경한 입장에 따라 성소수자에 대한 비우호적인 분위기가 강화됐다. 지난 2012년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프라이드 행진을 금지했고, 2013년 미성년자에 대한 동성애 선전 금지법을 채택했다. 2020년에는 헌법 개정안에 동성결혼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3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서 군사 담당 기자들을 초대해 우크라이나 대반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간담회를 열고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3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서 군사 담당 기자들을 초대해 우크라이나 대반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간담회를 열고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특히 지난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과의 대립이 첨예해지면서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분위기가 더욱 두드러졌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동성애 선전 금지 적용 대상을 기존 미성년자에서, 성인에게까지 대폭 확대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성소수자 관련 출판과 영상 제작 등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동성애 선전·선동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타락한 서방과의 실존적 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고위 인사들은 서방에서 중요시하는 성소수자 인권을 러시아를 위협하는 서방 이념으로 거론하고 있다.

통합러시아당 소속 뱌체슬로프 볼로딘 하원의장은 14일 성전환을 “순수한 사탄주의”라고 칭하면서 “러시아에선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고, 이런 악마 같은 정책은 미국에서나 시행되도록 내버려 두자”고 했다. 앞서 지난 2021년 푸틴 대통령도 “아이들에게 성별을 바꿀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괴물 같은 반인륜적 범죄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이번 법안에는 수술받지 않은 성전환자가 국가 문서상 성별 변경을 신청하는 것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러시아 하원에서 남성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는 징집을 피하기 위해 성전환 증명서를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추가됐다고 러시아 모스크바타임스가 전했다.

지난 2월 러시아 내무부에 따르면 성별 변경으로 발급된 여권 수는 2020년 428개에서 2022년 936개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성별 변경에 대한 여권 발급은 수주에서 2년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최근 미국에서도 성전환자에 대한 권리 규제가 거세지고 있고 전했다. 공화당이 장악한 20여 개 주에선 성전환 치료 금지, 성정체성에 따른 화장실 사용 금지, 학교 내 성정체성 토론 금지, 성전환 선수들 대회 출전 제한 등 반(反)성전환자 관련 법안 500여개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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