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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판 칩스법’ 합의…EU도 반도체 전쟁 참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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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유럽연합(EU)이 총 430억 유로(약 62조원)를 투입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유럽판 칩스법’ 시행에 최종 합의했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이 펼치고 있는 반도체 패권 전쟁에 유럽까지 본격적으로 참전한 모습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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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는 18일(현지시간) 2030년까지 민간과 공공에서 430억 유로를 투입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린다는 내용의 신규 반도체법 시행에 합의했다. 현재 EU의 시장 점유율은 10%가 채 안 된다. 당초 첨단 반도체 공장으로 지원 대상을 한정했지만, 합의를 거쳐 레거시(구형)공정 생산부문과 연구개발(R&D), 설계 부문 등 반도체 공급망 전반으로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EU칩스법은 유럽의회와 이사회 표결을 거쳐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EU는 세계 반도체 수요의 20%를 차지하는 주요 소비 시장이다.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크다. 하지만 EU에서 생산되는 반도체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8.5%에 그친다. 대신 반도체 장비 분야 경쟁력은 상위권이다. 전 세계에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유일하게 생산하는 네덜란드 기업 ASML이 대표적이다. EU는 이번 반도체법을 통해 장비뿐 아니라 설계부터 제조까지 반도체 공급망 전반의 생산량과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글로벌 반도체 기업 중 유럽행을 결정한 곳도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은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170억 유로(24조원)를 투자해 공장을 짓고, 기존 아일랜드 공장에도 45억 유로를 투자해 규모를 두 배로 확대할 계획이다. 대만 TSMC도 독일 드레스덴에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현재 독일 정부와 정확한 투자 규모 등을 협상 중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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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 따르면 유럽 국가는 국내 반도체 기업의 생산시설 유치를 위해 러브콜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당장은 유럽에 투자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유럽에 이미 생산시설이 진출해 있는 상황도 아니고 미국과는 상황이 아주 다르다”라며 “진출하는 게 유리할지에 대해서는 향후에 보조금을 비롯해 다각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유럽이 유치하고 싶은 것은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공장인데 파운드리가 진출하려면 팹리스(설계), 디자인하우스 등 생태계 전반이 갖춰져야 한다”라며 “그런 관점에서 미국보다 유럽은 기반이 적어 투자처로 매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이어 “유럽 반도체 수요는 주로 차량용인데, 차량용 반도체는 수익성이 적어서 주문이 줄었을 때 기업 리스크가 커 한국 기업 입장에선 선뜻 투자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9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역외 기업에 대한 명시적 차별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생산시설이 EU 내에 없기 때문에 직접적 영향은 적다는 분석이다. 또한 EU 내 반도체 생산설비 확충은 국내 소부장 기업의 수출 기회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전문가는 장기적 관점에서 유럽의 이러한 움직임이 한국 반도체 산업에 주는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직접 경쟁 관계는 아니지만,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를 육성하려는 상황에서 잠재적 경쟁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며 “앞으로 반도체 산업에서의 경쟁 구도가 변하고 더 치열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시장에 플레이어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셈법이 더 복잡해질 것”이라며 “반도체 기업에 제일 중요한 건 인재인데 이제 중국, 미국, 대만에 더해 유럽까지도 인재확보 경쟁에 뛰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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