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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안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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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현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현주 증권부 기자

최현주 증권부 기자

딱 10개월 전이다. 유명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햄버거 세트를 시켰는데 감자튀김 대신 치즈스틱이 나왔다. 당시 주요 감자 수출국이 기후 이상으로 수확량이 줄었다며 “우리 먹을 것도 부족하다”고 수출을 금했다. 식용유를 만들 콩, 빵·국수 재료인 밀은 물론 옥수수 등 사료비가 오르면서 고깃값도 함께 올랐다.

어렵게 물량을 구해도 코로나19에 따른 해상·항공 물류난 때문에 한국으로 들여오지 못했다. 식량 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반짝 높아졌고 정부는 곡물 자급률을 높이겠다고 나섰다. 0.7%인 밀 자급률을 2025년까지 3년 만에 5%로 높이겠다는 식이다. 논을 밭으로 바꾸겠다는 얘기였는데 식품업계에선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비웃었다.

식량 안보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엔 쌀 문제다. 남는 쌀을 정부가 사들이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거대 야당의 주도로 강행 처리됐다. 쌀 초과 생산량이 예상치의 3~5%를 넘거나 쌀값이 평년 대비 5~8% 이상 하락하면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한다는 내용이다. 현재는 정부 ‘재량’에 따른다.

야당은 주식인 쌀 보호는 식량 안보를 위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여당은 초과 생산되는 쌀 매입에 연평균 1조원이 든다며 나랏돈 낭비라고 반발한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2021년 기준)은 44.4%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바닥권이다. 쌀(84.6%)을 제외하면 밀(0.7%), 옥수수(0.8%), 콩(5.9%) 등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세계 식량안보지수(GFSI)는 113개 국가 중 39위다.

식량 안보 시대에 먹거리 확보는 중요하다. 그런데 자급률이 높은 쌀만 챙기면 될까. 2005년 80.7㎏이었던 1인당 쌀 소비량은 올해 55.6㎏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루에 밥 한 공기(155g)만 먹는다는 얘기다. 서구화한 식단으로 고기·빵 소비가 늘어난 데다 먹거리가 다양해진 까닭이다. 되레 고기가 주식이 됐다. 1인당 고기(돼지·소·닭고기) 소비량은 58.4㎏으로, 쌀보다 많다.

정작 정치권에서 식량 수입 다변화, 농업 조세특례 연장, 스마트 농업기술 개발 같은 논의는 없다. 이번엔 220만 농민 표를 노린 ‘전형적인 포퓰리즘 행정’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가 이전투구 대상이 되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