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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얼룩말 ‘세로’의 행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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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얼룩말은 원래 아프리카 대륙에 무리 지어 서식하는 동물이다. 말이나 당나귀와 달리 가축으로 길들지 않았다. 도심에서 활보하는 얼룩말을 보고도 믿기 어려운 이유다. 지난 23일, 서울 어린이대공원 탈출 3시간여 만에 붙잡힌 얼룩말 ‘세로’ 이야기다.

동물원 탈출사건은 국내외에서 꾸준히 보고된다. 2005년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코끼리 6마리는 4시간여 도심을 활보했다. 2010년엔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말레이곰 ‘꼬마’가 청계산으로 달아나 9일 만에 포획되기도 했다. 2018년 대전 오월드의 퓨마 ‘뽀롱이’는 헬기까지 동원한 대규모 수색 끝에 사살됐다.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의 오랑우탄 켄은 이 분야의 전설로 남아 있다. 1985년 이래 세 번이나 사육장에서 탈출한 켄은 마치 관람객인 양 산책하며 다른 동물을 구경했다고 한다.

애초에 동물원은 동물을 위한 시설이 아니었다. 이국적인 동물을 수집해 과시하는 건 왕실과 귀족의 고급 취미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스트리아 쇤부른 동물원은 1752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설립했다. 전 세계에서 동물을 포획해 자국으로 들여오는 건 제국주의 열강이 힘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여러 종을 한데 모아둔 덕에 동물원은 과학연구의 산실이자 교육의 장으로 기능한다. 오늘날엔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고 복원하며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동물원 사육 환경은 자연 서식지를 재현하는 형태로 진화하는 추세다. 그러나 한국에선 공영 동물원조차도 주요 선진국에선 20세기 중반에 이미 사라진 감옥형 전시관을 사용한다. 환경부가 2019년 국내 공립·민간 동물원 110곳을 조사한 결과 동물복지·공중보건·안전·서식환경·생물종상태 등 모든 항목이 평균 ‘나쁨’으로 평가됐다. 체험형 민간 동물원은 더 열악하다.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은 2016년에야 제정됐다. 이 법에 따라 수립된 ‘제1차 동물원 관리 종합 계획(2021~2025)’의 비전은 ‘사람과 동물 모두가 행복한 동물원’이다. 어린이대공원 측은 얼룩말 세로가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된 뒤부터 반항아가 됐다고 설명한다. 동물원 환경이 개선되고, 얼룩말 세로도 행복해질 날이 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