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사람은 인권도 없나/경찰,살인범 잡는다며 마구 연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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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여자관계등 사생활 추적/「단골 용의자」 체모 뽑아가/86년이후 3만여명 조사… 정신 불안증세도
【수원=이철희·정찬민기자】 부녀자 연쇄피살로 치안공백을 빚었던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일대가 경찰의 저인망식 연행수사로 「인권 실종지대」로 변했다.
여자들은 살인공포에 떨고 남자들은 경찰의 무더기 연행,사생활 추적조사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정상적인 생활에 지장을 받는가 하면 용의자로 경찰조사를 받은 사람 가운데는 극도의 정신적 불안증세를 보이는 경우까지 있다.
86년12월 연쇄피살 사건이 발생한 후 경찰이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연행·추적수사를 벌여온 주민들은 3만여명. 경찰은 그러나 16일 여중생 피살사건이 발생하자 또 주민 60여명을 연행,추적수사를 벌였다.
특히 경찰은 사건 발생때마다 용의자로 보고 그동안 수사를 벌여온 주민 7∼8명에 대해 이번 사건이 발생하자 재차 연행함으로써 이들은 이웃 주민들로부터 「화성사건 단골용의자」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피해와 함께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다.
첫번째 용의자로 몰려 경찰에 강제 연행된 언어장애자 차모씨(48·노동)는 『경찰이 17일 낮 강제연행,이틀 동안 감금수사를 벌여 이때 받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으로 문밖에도 안나가고 불안에 떨고 있다』며 『화성사건이 날때마다 경찰이 연행조사하는 바람에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딸이 창피해 학교마저 안가려고 하는 등 가정생활이 파괴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미혼자라는 이유로 자주 수사선상에 오른 김모씨(35·건축업)는 18일 『집으로 찾아온 형사 2명이 동네사람 앞에서 「왜 결혼을 안하느냐」 「동거하는 여자가 누구냐」고 묻는 등 용의자로 몰아붙여 수치감으로 이사갈 생각까지 하고 있다』며 『그동안 사건이 날때마다 범인 취급을 하는가 하면 88년 여덟번째 사건이 났을 때는 체모 대조작업을 벌인다고 다섯차례에 걸쳐 국부털과 머리털을 뽑아가는 수모까지 겪었다』고 밝혔다.
고모씨(27·목부·태안읍 송산리)는 『경관 2명이 전화신고가 접수돼 행적수사를 하겠다고 신상을 조사한 뒤 돌아가 두차례에 걸쳐 전화를 걸어 「어디 가지말고 그대로 있는게 신상에 좋을 것」이라고 위협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경찰의 무더기 연행으로 태안읍 인근 공장 남자근로자들은 아예 외출을 꺼려 상인들은 매상이 3분의1로 줄어 생계에 위협마저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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