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진만 찍은 꽃 되팔아요"…금값 된 꽃다발 '웃픈 중고거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7~10일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올라온 졸업식 꽃다발 판매글들이다. 황예린 기자

지난 7~10일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올라온 졸업식 꽃다발 판매글들이다. 황예린 기자

“오늘 쓴 졸업식 꽃다발 팔아요”, “구매 후 사진만 찍었어요”

지난 7~9일까지 서울 용산구·마포구 일대에서 접속한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는 졸업식에서 주고받은 꽃다발을 되판다는 글들이 계속 올라왔다. 9일 오후 2시 서울 망원역 인근에서 1만5000원에 꽃다발을 팔겠다는 글이 올라왔고 거래는 10분 만에 완료됐다.

비슷한 시간대에 서울 상암동에 사는 권모씨(50·여)도 “방금 졸업식 끝나자마자 올린다. 사진 잘 나온다”며 꽃다발을 같은 사이트에 내놨다. 딸 대학교 졸업식을 위해 5만원에 산 꽃다발을 2만원에 되팔려는 것이었다. 권씨는 “혹시나 하고 올려봤는데 4명에게서 동시에 사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먼저 연락된 사람과 거래가 불발되면 알려달라는 당부를 남기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꽃을 중고로 살 수 있는 줄 알았다면 나도 안 샀을 것”이라며 “딸도 ‘1시간 남짓 졸업식 사진 찍는 데 쓸 건데 중고 사도 괜찮을 뻔했네’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중고 꽃다발 매매가 졸업식 시즌의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 잡고 있다.

“꽃값이 금값”…난방비·비룟값 급등 영향

지난 10일 오전 서울 강서구 명덕여중·고등학교 정문 앞에 있던 한 상인은 ″여기는 중·고교 졸업식 두 개가 연이어 열려 그나마 절반 정도 팔았다″고 토로했다. 황예린 기자

지난 10일 오전 서울 강서구 명덕여중·고등학교 정문 앞에 있던 한 상인은 ″여기는 중·고교 졸업식 두 개가 연이어 열려 그나마 절반 정도 팔았다″고 토로했다. 황예린 기자

하루만 지나도 티가 나는 생화 꽃다발 중고거래가 활발해진 건 꽃값이 '금값'이 된 영향이 크다. 고등학교 졸업생 학부모 오모씨(52·여)는 “예전에 2~3만원 수준의 꽃다발이 5만원이더라”며 “차라리 용돈으로 줄까 한참 고민하다 집어들었다”고 말했다. 1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화훼유통정보를 보면, 지난 1~10일 동안 양재꽃시장 장미류 한 단 평균 경매가는 1만3655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8420원에 비해 60% 이상 오른 가격이다.

2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새해 첫 달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5.2% 올랐다. 자주 사는 품목 위주인 생활물가지수는 6.1% 상승했다. 꽃값 상승세는 이보다 훨씬 가파른 셈이다. 상인 A씨는 “화훼는 비닐하우스 내 온도 유지가 생명인데, 올 겨울 갑작스런 한파로 난방비가 크게 늘어난 데다 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비룟값마저 크게 올랐다”며 “꽃 도매가 급등은 피할 수 없는 결과”라고 말했다.

50년째 입학·졸업 시즌에만 꽃을 떼다 판다는 B씨도 “장미 10송이 도맷값이 종류에 따라 1만4000원에서 2만원까지 한다”며 “꽃다발에 들어가는 장미를 줄이거나 가격을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팔아도 밥값도 안 나와”…상인들 울상

고물가에 꽃값 급등으로 꽃다발에 지갑을 여는 사람이 줄어든 데다 중고거래까지 활성화되면서도 특수를 기대하던 상인들도 울상이다. 9일 졸업식이 열린 서울 은평구 예일여자고등학교 앞에서 만난 상인 엄모씨는 “물가가 뭐든지 다 올라서 이 정도로 팔아서 벌어도 밥값, 인건비도 안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타산이 안 맞으니 꽃을 팔러 나오는 이들도 줄었다”며 “이 구역에도 3팀뿐”이라고 말했다. 엄씨는 “3만원에 팔다 안 팔려서 2만원으로 내렸는데도 비싸다고 안 사려는 분위기”라며 “예전에 비해 5분의 1 정도의 수입”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은평구 예일여자고등학교 앞. 상인 B씨는 ″사람들이 혹시 나오면서 살까 봐 졸업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며 꽃다발 판매대 앞을 지켰다. 황예린 기자

지난 9일 오전 서울 은평구 예일여자고등학교 앞. 상인 B씨는 ″사람들이 혹시 나오면서 살까 봐 졸업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며 꽃다발 판매대 앞을 지켰다. 황예린 기자

B씨는 졸업식이 끝날 때까지 판매대를 정리하지 않은 채 자리를 지켰다. “끝나면 간혹가다 하나씩 사줄 때도 있어서…”라고 말했다. 그의 매대에는 다 못 판 꽃다발이 수북했다. B씨 옆으로 지나가던 한 중년 여성이 “얼마냐”고 묻자 B씨는 곧바로 “3만원인데 조금 더 싸게 드릴게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물은 이는 “아우, 비싸네”라며 등을 돌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