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짜리 교재 채택 땐 1권당 2000원 상납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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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 2002년 서울 Y고교 영어 교사 8명은 J출판사 교과서와 K출판사 교과서 중 어느 것을 채택할 것인지를 두고 한바탕 다툼을 벌였다. 투표 끝에 K출판사 교과서가 채택됐다. 교재 총판업자는 '감사의 뜻'으로 교사들에게 640만원을 건넸다. 그러나 K출판사 책을 지지하지 않은 교사들에게 돈이 적게 분배된 사실이 나중에 알려져 또 한번 분란이 일어났다.

#2. 올 3월 서울 S여고 송모(51) 교사 등 교사 11명은 "교재를 채택하면 판매금액의 20%를 주겠다"는 총판업자의 청탁을 받았다. 이에 교사들은 K출판사의 수능 부교재를 채택해 주고 70만원을 받는 등 최근 26회에 걸쳐 총 1630만원을 받아 나눠 가졌다.

교과서나 교재를 채택해 주는 대가로 교재 총판업자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챙긴 서울지역 13개 공립.사립 고교 교사 30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교사.도서총판업체.출판사가 얽힌 부패 사슬 속에서 학생들이 구입하는 교과서.교재 정가의 20%는 교사들에게 리베이트로 돌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20일 교과서 및 부교재 채택 리베이트를 주고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서울 지역 13개 고교의 교사 30명과 모 도서총판의 강모(45) 사장 등 임직원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강씨 등은 2002년부터 최근까지 교과서.부교재 판매금액의 20%를 준다는 명목으로 44차례에 걸쳐 2700만원을 교사들에게 제공한 혐의다.

◆ '리베이트 관행' 수사 확대=경찰은 상당수 출판사가 총판업체를 통해 교사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있으며, 업체는 영업사원을 일일이 각 학교 교사들에게 보내 로비해 온 단서를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 수사 결과 권당 4000~5000원인 교과서를 채택할 경우 교사들은 이를 구입하는 학생 1인당 1000~1500원(책값의 20%)으로 계산된 리베이트를 받았다. 부교재도 마찬가지로 정가의 20%를 교사들이 챙겼다. 일선 서점이 교재를 팔 때 얻는 마진과 맞먹는 비율이다.

경찰 관계자는 "교과서가 한번 채택되면 출판사와 총판업체 입장에선 이에 따른 부교재도 5~6년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 적극적으로 로비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출판사는 '영업보전비' 명목으로 총판업체를 통해 교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지급하면서도 마치 반품이 들어온 것처럼 장부에 허위 기재하는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고 한다.

◆ 연간 수백억원대 커넥션=경찰은 "교사들이 평균 20%의 리베이트를 챙기고, 수능시험을 보는 전국 인문계 고교생이 총 128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고교 부교재만 해도 적어도 연간 520억원이 채택료로 제공됐을 것"으로 추산했다. 정가에 이미 채택료가 포함돼 있어 교과서와 부교재를 사는 학생들이 고스란히 부담하게 되는 셈이다. 전국의 고교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검인정 교과서는 66과목 411권(지난해 2월 기준)이다. 경찰은 "로비를 근절하고 출판사와 일선 서점이 직거래하도록 유통구조를 개선하면 가격이 30~40%는 인하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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