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詩)와 사색] 나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21호 30면


김종삼

나의 이상(理想)은 어느 한촌(寒村) 역(驛) 같다
간혹 크고 작은
길 나무의 굳어진 기인 눈길 같다.
가보진 못했던 다 파한 어느 시골 장거리의
저녁녘 같다.
나의 연인(戀人)은 다 파한 시골
장거리의 골목 안 한 귀퉁이 같다.

『김종삼 전집』 (나남 2005)

생각해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온전한 것. 이것을 이상(理想)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상은 동떨어진 별세계에 있는 게 아니라 나의 감각 속에서 태어나고 머무는 것입니다. 다만 생활과 현실 탓에 가장자리로 밀려날 때가 많지요. 눈길을 주자니 마음이 아프고 발길을 잇자니 여유가 없기에 우리는 이상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립니다. 하지만 가끔은 작정을 하고 나의 이상이 살고 있는 후미진 거처를 찾아가고 싶습니다. 잠깐 있을 요량으로 쪼그려 앉지 말고 편히 퍼더버리고 앉아 이상 곁에 머물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즐거워하고 사랑했던 것들이 오래된 이웃들처럼 몰려들지도 모릅니다. 새해의 새날들, 조금 천천히 일어나도 좋겠다는 말입니다.

박준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