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계 건마다 마찰음/미의 대한통상 불만과 정부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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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과소비 추방ㆍUR대책 못마땅/정부,자주권 지키며 수용 검토
한미 양국의 통상관계가 전만 같지 않다.
서로를 대하기가 불편하고 점차 냉기를 더해가는 분위기다. 지난해 5월의 양국통상회담 이후 올해까지 연속 한국을 우선 협상대상국(PEC) 지정에서 제외,상호 부드럽게 지내오던 상황과는 딴판으로 흘러가고 있다.
올 봄까지만 해도 큰 문제가 없던 양국 통상관계에 마찰음이 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국내에서 「과소비억제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부터였다.
더구나 최근 들어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선언으로 호화사치풍조의 퇴치가 다시 적극화되면서 미국측의 불만도 강도를 한층 높여가고 있다.
지난 10월말 크리스토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를 시발로 11월 한미금융정책회의,가장 최근에는 솔로몬 미 국무부 차관보에 이르기까지 방한 인사들마다 직접 소관업무에 관계가 있건 없건 이 문제를 제기해오고 있다.
국내의 과소비억제운동에 대한 현재 미국의 시각은 순수 민간차원의 캠페인이라는 우리의 설명을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다.
○방한 인사마다 문제 제기
한국정부가 주도는 안했더라도 뒤에서 부추기고 있으며,그간의 사치성 외제 소비판매장의 축소 또는 폐쇄,국세청의 호화생활자에 대한 세무조사 등 일련의 일들이 이를 충분히 입증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이다.
특히 미국측의 불만을 산 것은 기아자동차가 미 포드사로부터 수입판매중인 「세이블」 승용차의 판매 격감.
실제 작년 가을 이후 수입외제차 중 판매실적 1위를 기록해왔던 「세이블」은 국세청의 호화생활자에 대한 세무조사 이후 급격히 줄어 최근에는 월 50∼60대 판매에 머물고 있으며,이것이 바로 정부의 개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이 대한 통상의 입장을 이처럼 강경화한 데는 기본적으로 서로의 사회ㆍ문화에 대한 시각차가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근검ㆍ절약을 가장 큰 덕목 중의 하나로 꼽는 한국사회의 의식구조가 미국사회 분위기로는 이해가 쉽지 않은 대목이다.
미국은 한국이 과소비억제운동을 벌이더라도 그것이 「시장접근」의 장애가 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이고 이같은 사례가 쌓일 경우 일본과 벌이고 있는 이른바 구조조정회의를 한국에도 요구해올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통상전문가들은 ▲북방정책 추진으로 인한 대한 관계의 거리감 ▲한국내 반미운동의 확산 등으로 한국정부가 대외정책에 있어 미국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감도가 떨어진 것도 이같은 미국측 태도변화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로서는 이같은 미국의 강경노선에 대해 가닥을 잘못 잡았다가는 전반적인 양국 관계에 상처를 가져올 수 있다는 면에서 상당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근검절약 덕목 이해 못해
정부는 그러나 대미 관계의 악화가 결코 득될 것이 없다는 면에서 잇따른 회의결과 한미 통상현안에 대해 국내법 등과 관련,자주권 침해사항이 아니면 긍정적으로 수용키로 하는 한편 과소비억제도 정부가 전혀 개입이 없었다는 점을 계속 설득한다는 대미 통상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국무회의가 각종 공문에서 「소비」라는 용어를 빼고 「호화사치낭비」로 바꿔 쓰기로 한 것도 이같은 정부태도 변화의 일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측이 이런 성의를 보인다고 해서 한미 통상관계가 현재로선 쉽게 호전되기 어렵고 냉기가 걷히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전망이다. 미국 정부ㆍ의회의 대한 시각이 굳어 있는 데다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도 최대관건인 농산물부문에서 미국측은 한국의 태도를 탐탁히 여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은 내년 1월 중순 서울에서 열릴 한미경제협의회에 앞서 연내 무역실무회의를 가질 예정인데 양국간 통상마찰은 이를 계기로 다시 한 번 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미 통상관계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데는 미국의 내정 간섭적인 압력이 1차적으로 큰 문제고 정부의 대응이 매끄럽지 못한 탓도 있다. 그동안 국내경제 현안에만 몰두하다 보니 이들 정책이 대외 관계에 미칠 영향을 소홀히했고 북방정책만 해도 정부가 실제성과 이상으로 분위기만 고조시켜 기존우방과의 관계를 적절히 고려하는 자세가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매끄럽지 못한 우리 대응
아무튼 한미 관계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ㆍ사회적으로 밀접히 엮고 있고 최소한 경제면에서라도 미국은 가장 열린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이며,급선무가 되고 있는 기술개발도 미국만큼 기댈 데가 없다는 인식이 정부는 물론 모두에게 새삼 강조되어야 할 시점이다.<장성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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