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2023년도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12월 2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 국회 예산안 소위가 정체되면서 예산 심사는 다음 단계인 소(小)소위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소소위 구성원은 국회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 단 3명뿐이다. 소소위는 철저하게 비공개로 진행되고 속기록조차 남지 않아 ‘밀실 심사’로도 불린다. 특히, 국회법에도 구체적 근거 조항이 없는 기구여서도 “편법”이란 지적을 꾸준히 받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소소위에서 사업당 수백억원의 혈세 투입이 좌우되는 것을 두고 ‘짬짜미’라는 손가락질도 있지만, 예산을 따낸 지역구 의원에게는 훈장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속기록도 없다…지난해 100억 이상 증액 SOC만 16개
수많은 예산의 운명을 좌우하는 소소위의 위력은 지난해에도 입증됐다. 중앙일보가 민간 경제연구원인 나라살림연구소의 ‘2022년 예산안 국회 심의 현황 및 개선 방안’ 보고서와 국회 결산 자료 등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당시 소소위에서 100억원 이상 증액한 사업은 79개에 달했다. 이중 민원성 쪽지 경쟁이 치열했을 것으로 보이는 철도·도로 등 사회기반시설(SOC) 사업은 16개로 사업당 평균 175억6000만원씩 증액됐다. 월곶-판교 복선전철 사업이 467억원 증액됐고, 광주-목포 호남고속철도 건설 예산은 408억원, 이천-충주-문경 철도 건설 예산은 394억원 늘었다.
사업 성격이나 규모가 다른 SOC 사업들이 자로 잰 듯이 똑같이 증액된 사례도 있다. 충청내륙2국도, 포항-안동국도, 춘천-속초 단선전철 건설 등 7개 사업은 소소위에서 모두 100억원씩 증액됐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꼼꼼한 심사에 따른 예산 분배라기보다는 여야가 밀실에서 정치적 타협을 통해 나눠 먹기 했을 것으로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정부 원안에 없다가 새롭게 증액된 사업도 76개에 달했고, 이중 SOC 사업은 14건, 총 145억원 규모였다. 태릉-구리 광역도로 건설 사업 명목으로 38억2500만원, 부전-마산 광역철도 사업 30억원, 태화강-송정 광역철도 사업에 21억원이 반영된 게 대표적이다. 모두 관련 지역구 의원들이 홍보에 열을 올린 사업들이다.
“소소위 결과가 곧 총선 성적표 ”…쪽지 전쟁 과열 예고
SOC 예산을 둘러싼 밀실 심사는 올해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여야 정치인들의 ‘쪽지 전쟁’도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예산안 소위가 헛돌면서 소소위의 비중이 커진 데다가, 윤석열 정부가 긴축 재정에 방점을 두면서 나눠갈 파이가 한정된 탓이다.
1년 반 앞으로 다가온 총선도 쪽지 경쟁을 더 치열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국민의힘 PK(부산·울산·경남) 지역 의원은 통화에서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 심사인 만큼 얼마나 확보하냐에 따라 지역 민심이 요동칠 것”이라며 “소소위 결과가 총선 성적과 직결될 수 있어 다들 긴장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소소위에서 당내 실세 의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여당 관계자는 “과거 소소위 심사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당 지도부나 실세 의원들이 알짜배기 사업 예산을 따낸 사례가 많다”며 “이 과정에서 소외된 비주류 의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거대 야당이 169석을 틀어쥔 상황도 변수다. “민주당의 부실 사업 예산을 견제하겠다”(국민의힘 예산안 소위 위원)는 게 여당의 공식 입장이지만, 소소위 심사 과정에서 일정 부분 타협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과거 예산안 소위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여권 관계자는 “2020년 소소위 심사 당시 우리 당이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 예산을 절반 이상 깎겠다고 벼르다가 3% 삭감에 그친 사례도 있다”며 “지역 민원 예산을 최대한 살려야 하는 여당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민주당 추진 예산을 어느 정도 눈감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최근 예산안 단독 처리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여당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상민 연구위원은 “소소위가 밀실 심사, 짬짜미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적어도 속기록은 작성하고 특정 기간이 지난 뒤 공개하는 방식으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